가정해보자. 최근 한 달 사이 용산 대통령실 안팎에서 불거졌던 논란들이 종로 청와대에서 터져 나왔다면 어땠을까.
만약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첫 해외 방문 일정에 청와대 직원도, 공무원도 아닌 민간인이 동행했다면? 그것도 공군 1호기에 탑승해서. 게다가 청와대 핵심 참모의 아내인 이 민간인이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현지 일정을 도왔다는 의혹도 나왔다면?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과연 “이 민간인은 오랜 해외 체류 경험과 국제 행사 기획 역량을 가졌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아마 ‘비선 논란’을 제기하며 청와대를 향해 맹폭을 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민간인의 청와대 출입 기록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청와대 앞 항의 방문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실도 밝혀졌다면? 이를 두고 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해온 동지”라고 해명했다면 국민의힘은 “이해할 수 있는 채용”이라며 수긍했을까.
여기에 더해 문 전 대통령과 교분이 있는 부산 지인의 아들이 청와대에서 9급 행정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실까지 알려졌다면? 문 전 대통령에게 100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낸 이 행정요원을 두고 친문(친문재인) 진영 핵심인 집권 여당 원내대표가 “내가 추천했다.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는데 9급에 넣었다”고 볼멘소리까지 했다면? “‘사적 채용’ 주장은 선출직 비서실의 특성을 간과한 폄훼용 프레임”이라는 청와대의 반발에 국민의힘은 고개를 끄덕였을까.
이런 가정에 차마 국민의힘은 “우리는 문제 삼지 않았을 거다”고는 못할 것이다. 지금 여론이 들끓는 이유다. 게다가 이런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고전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여권의 무지와 무감각 때문이다.
논란이 불거졌을 때마다 대통령실의 반응은 “적법한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는 않지만” 등의 의례적인 수사(修辭)도 없었다. 집권 여당은 한술 더 떴다. “9급 월급이 적어 미안하더라”는 집권 여당 ‘원 톱’의 말에 국민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공감 능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권의 항변 중 압권은 “문재인 정부도 그랬다”는 주장이다. 지난 5년 내내 이어졌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질릴 대로 질린 유권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판단을 일찌감치 끝냈다. 그 결과가 3·9대선에서의 윤 대통령 승리, 그리고 6·1지방선거에서의 국민의힘 압승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채용에 논란의 소지가 있었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은 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이 두 번의 선거에서 윤석열 정부를 택한 건, ‘문재인 정부처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 잘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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