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감정을 풀어놓은 게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시는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서구 모더니즘 시인 T S 엘리엇의 말이다. 자신의 감정과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억제하고 승화하는 것을 미학적 원리로 삼았던 엘리엇다운 발언이다. 이것은 건축가 김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미학이다. 그도 자신의 건축을 감정과 개성으로부터의 탈출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만든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은 얼핏 보면 개성이 없어 보인다. 그는 그곳에 아주 오랫동안 있어서 이제는 자연의 일부가 된 초등학교, 그 폐교를 활용했다. 자연에 아무런 상처를 내지 않고 건물을 지은 셈이다. 양쪽에 있던 교실은 조금만 바꾸고, 가운데 있던 교무실의 일부만 들어내고 거기에 높이가 18m쯤 되는 다소 허름한 전망대를 세웠다. 그게 전부다. 개성이 묻어나는 멋진 건축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그것은 “주변을 압도하지 않는, 절대로 홀로 튀지 않는, 잘난 척하지 않는, 그래서 오래전부터 늘 거기에 있었던 것같이 자연스럽고 의연한” 건물이 되었다. 건물 안에 전시된 미당의 매혹적인 시,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섞인 삶의 자취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건물이 튀지 않아서다. 투박한 콘크리트 전망대에 올라, 아니 올라가면서도 사방으로 뚫린 창을 통해 보이는 고창 바다와 변산반도, 미당의 생가, 질마재, 소요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당을 키웠다는 바람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은 건물이 잘난 척을 하지 않아서다.
건축가는 감정을 풀어놓고 개성을 표현하는 대신, 그것들로부터 탈출함으로써 미당의 시와 매혹적인 풍광에 시선이 가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그렇다면 그는 개성이 없는 건축가일까? 아니다. 개성이라면 차고 넘친다. 다만 엘리엇의 말처럼 “개성과 감정을 가진 사람만이 그것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안다”. 예술은 때로 자기중심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이타성의 획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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