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송해 박완서가 보여준… 인생 후반부 롱런 행보의 비결[광화문에서/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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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문화부 차장
김정은 문화부 차장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목표가 없어지잖아요. 근데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에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74세의 나이로 한국 배우 사상 첫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 그의 오랜 지인이자 미국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타이밍 디렉터로 일하는 김정자 씨(68)가 tvN ‘뜻밖의 여정’에 출연해 한 말이다. 김 씨 역시 2018년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배우 윤여정이 열어준 ‘가능성’에 희망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배우 오영수는 78세에 한국인 사상 첫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작고한 ‘최고령 MC’ 송해는 은퇴 나이로 언급되는 61세에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이는 윤여정 오영수 송해 외에도 2011년 작고한 작가 박완서가 대표적이다. 나이 마흔에 자식을 다섯이나 둔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던 그는 19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등단했다. 이후 여든까지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백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인물들이다. 유명한 사람들이라 노년에 빛을 본 것 아니냐고 단정하기엔 이들이 달려온 과정 군데군데 눈여겨볼 부분이 상당하다.

윤여정은 신념이 확고하다. 일제강점기 고향을 떠난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 역을 맡은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영어로 써내려간 이면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라 잘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한 걸그룹의 멤버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긴또깡?”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오버랩되며 한국 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고 인터뷰에 임하는 윤여정의 태도가 남달라 보였다. 그런 신념과 변치 않는 노력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게 아닐까.

‘죽기 전까지 마이크를 잡고 싶다’던 송해는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단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는 프로였다. 녹화 30분 전엔 무대에 올라 묵상하고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리허설을 진행했다. 후배 이상벽과의 생전 인터뷰에선 “각 동네만의 정서를 읽어내야 하기에 준비를 꼭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34년간 사회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그의 이름값이 아닌 ‘노력’ 덕분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말년까지 창작욕을 불태웠다. 생전 인터뷰에서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어요. 돈 욕심은 사라졌는데 아직 남아있는 욕심이 있다면 ‘이런 거 하나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들의 행보를 되짚어 보며 ‘사회적 활동의 종착점이라 여긴 만 60세는 어쩌면 예쁘게 피운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시작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윤여정 송해 오영수 박완서가 앞서 보여줬듯 말이다.

#인생 후반부#롱런 행보#사회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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