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재첩의 추억[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1〉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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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재칫국 사이소, 재칫국.” 재첩국 아지매의 목소리가 잠결에 환청처럼 크게 들렸다가 점점 멀어지며 희미해질 즈음 급하게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곤 했다. 골목길을 누비던 재첩국 아지매의 독특한 억양과 목소리를 부산의 중장년층은 기억할 터.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부추를 썰어 넣은 맑고 은은한 재첩국과 재첩숙회무침에 밥을 비벼서 먹던 추억의 맛은 아직도 선명하다.

낙동강 재첩은 부산의 명지, 엄궁, 하단과 김해시는 물론이고 양산시 물금읍과 원동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했다. 그만큼 개체 수가 많아서 국내 최대 산지였다. 1983년 착공해 1987년 완공한 낙동강 하굿둑 조성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를 계기로 재첩 주산지는 섬진강으로 옮겨갔다. 낙동강 재첩은 섬진강 재첩과는 달리 껍데기가 까맣고 반질반질 윤기가 돌았다. 강변 마을은 재첩 껍데기가 쌓여 언덕을 이뤘고, 집집마다 재첩 씻는 소리가 담장을 넘었다고 노인들은 회상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으로 수출길이 열리면서 낙동강 재첩잡이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가격이 높게 형성되자 재첩을 잡지 않던 사람들까지 뛰어들었고, 주요 포구는 재첩배로 넘쳐났다. 마을마다 어촌계를 중심으로 공유수면에 대나무 말뚝을 박아 조개장이라는 재첩 양식장을 만들면서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단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잡이’(황경숙 저)에 따르면 낙동강 재첩잡이 어민들은 1980년대부터 섬진강, 강원도 송지호, 울산 태화강, 포항 형산강 등지로 재첩잡이 원정을 떠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다. 국내 최대 재첩 생산량과 앞선 재첩잡이 기술을 자랑했으나, 하굿둑 조성으로 재첩잡이는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하굿둑은 물 공급 등 나름의 역할을 했으나, 생태계를 파괴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2017년부터 낙동강 하굿둑 수문 시범 개방을 추진해 생태복원 가능성을 확인해 왔다. 2022년 2월부터 매월 밀물이 가장 높은 대조기마다 수문을 열고 있다. 하굿둑 상류로 바닷물이 유입되도록 해 자연 상태에 가까운 기수역(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다. 농토에 피해가 없도록 바닷물이 올라가는 범위를 하굿둑에서 상류 15km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최대 재첩 산지는 섬진강으로 국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섬진강 재첩잡이는 경남 하동군(75ha)과 전남 광양시(65ha)가 양분하고 있다. 두 지역 주민들은 장대 끝에 부챗살 모양의 긁개가 달린 ‘거랭이’라 부르는 손틀 도구를 이용해 재첩을 캔다. ‘하동·광양 재첩잡이 손틀어업’은 2018년에 ‘국가중요어업유산(제7호)’으로 지정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유·무형의 어업자원으로 보전 가치를 입증받은 셈이다. 섬진강 상류 주암댐 건설 이후 유량이 줄어 유속이 느려지고, 광양만 일대 준설로 바닷물이 역류하면서 재첩 서식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 주민들은 치패 방류 사업과 재첩 서식지를 잠식하는 우럭조개를 잡아내는 등 재첩 보호에 힘쓰고 있다. 섬진강 재첩 서식지가 잘 보존되고, 낙동강 생태가 복원돼 어느 지역 재첩이 맛있는지를 두고 미식가들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미리 상상해본다.

#낙동강#재첩#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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