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다시 태어나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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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작가는 어떻게 창의성을 단련할까. 책 읽고 글 쓰는 아침 리추얼(ritual)을 오래 해왔다. 효율성과 합리성은 따지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읽고 쓸 것. 날마다 시작되는 아침은 정직하고 성실했다. 고요한 아침에 기대어 나는 문장들에 몰입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썼다. 온전한 나를 위한 순전한 활동이었다.

올해부터 여기에 ‘사람’을 더해 보았다. 함께 읽고 쓰는 온라인 리추얼을 이끌었고, 여기서 정 선생님을 만났다. 올해 고희를 맞이한 정 선생님은 메신저와 앱, 줌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소통법을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서 참여했다. 선생님은 아침마다 철학서를 읽고 노트 가득 필사해 사진을 올렸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스스럼없이 감탄했고, 동료들의 글마다 인생 명언 같은 답글을 남겨 주었다. 우리는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르며 유난히 부지런한 한 달을 보냈다.

리추얼을 마무리하는 화상대화에서 백발을 깨끗하게 빗어 묶은 정 선생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상상해 왔던 그대로 곧고 다부진 인상이었다. 그간 책 읽고 문장을 필사했을 책상 너머로 빽빽한 책장이 보였다. 혼자 사는 방은 단출했지만 단단한 세계가 단정히 정돈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읽고 써본 아침의 회고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젊은 여러분은 일흔이 되면 어떨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오늘 아침에 ‘진정한 고독은 아주 고아하게 혼자 서는 것’이라는 문장을 읽었어요. 일흔의 저도 고아하게 혼자 서 있습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날마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읽고 쓰는 노인에게는 아픈 몸과 사이좋게 지내는 지혜가 중요하지요. 아침 일찍 읽기 위해서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오후 내내 쓰기 위해서 건강하게 식사하고 자주 걸어요. 언제고 찾아오는 책과 문장이 있기에 매일매일이 새롭습니다.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 같아요. 젊고 활기찬 여러분과 함께한 나날이 기쁨이었습니다.”

일흔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고아하게 혼자 서서 진정한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 나이에 주저 없이 시도하고 대화하는 사람 또한 아름다운 미래라는 걸, 나는 정 선생님에게서 보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온전히 태어나 보기도 전에 죽는다. 창의성이란 죽기 전에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아침에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문장을 이렇게 사람에게서 마주 만나본다. 나는 대답했다. “일흔이 되어도 우리는 자기답게 살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 읽고 쓰고 공부하는걸요. 죽기 전에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테니까요.” 정 선생님도 우리도. 몇 번이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 읽고 쓸 것이다. 온전히 태어나볼 것이다.

#죽기 전#다시 태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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