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나는 틀렸다”는 20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조 바이든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초래할 인플레 효과를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로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초 코로나19에 대응해 1조9000억 달러(약 2496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집행했다. 당시 과도한 재정지출이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자 크루그먼 교수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미국 물가가 9.1%까지 치솟자 판단 착오를 반성한 것이다. 앞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인플레 위험을 낮춰 봤다고 시인했다.
미국에선 경제 석학, 주무 부처와 중앙은행 최고 책임자가 뒤늦게나마 과도한 재정지출, 인플레 예측 실패를 사과하는데, 몇 년간 사상 초유의 퍼주기 경쟁을 벌인 한국 정치권은 반성할 기미가 없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000년 4·15총선을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고, 작년 4·7재·보궐선거, 올해 3월 대통령선거 직전에 선심성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50조 원 지원’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 역시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반지출 39조 원을 포함한 62조 원짜리 추경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최근의 물가 상승이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교란 등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이 나랏빚을 늘리며 쓴 포퓰리즘 정책의 영향이 작다고 할 수 없다. 집값 폭등, 청년들의 ‘빚투’ ‘영끌’ 주식 투자, ‘김치 프리미엄’이란 말이 나오는 가상화폐 시장 거품도 넘쳐난 유동성의 후유증이다.
연간 13조1000억 원의 세금을 깎아준다는 정부 감세안도 인플레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세제 정상화,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도 당장은 유동성을 늘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효과를 줄일 수 있다. 특히 수입 감소만큼 정부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국가채무가 늘어 재정건전성까지 위협하게 된다. 인플레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정부와 정치권은 무분별한 선심성 퍼주기를 중단하고 공공부문의 과감한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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