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한국 경제의 뇌관 될 수도 있다[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3일 03시 00분


日 부동산, 버블 붕괴 후 15년간 하락
韓, 실물자산 비중 80%에 부채 과다
일본 경험 교훈 삼아 대책 강구해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서울 강남구와 곧잘 비교되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서 분양하는 한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를 봤더니, 32층에 위치한 전용면적 82m²의 분양가가 1억4200만 엔이었다. 미나토구치고는 조금 싼 지역이긴 하지만 소비세 10%를 더해도 1억5600만 엔, 원화로 15억 원이 넘지 않는다. 서울 강북 느낌의 지역으로 가서 지은 지 7, 8년 된 25평형 아파트 시세를 보면 대부분 5억, 6억 원 수준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20, 30대 직장인이라면 부모의 도움 없이 은행 대출을 이용해 충분히 매입할 수 있다.

도쿄의 집값은 1991년에 정점을 찍은 뒤, 2004년까지 꾸준히 떨어지다가 2005년에 들어서야 하락을 멈췄고, 이후로는 경기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급격한 버블의 형성과 붕괴, 그리고 그 후 10년이 넘는 부동산 침체를 경험한 일본인들은 이제 더 이상 주택을 투자나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집을 매매하는 경우 되도록이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고 싶어 하는 것은 일본인도 마찬가지지만 집을 언제 사고 언제 파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집값이 떨어질까봐 혹은 올라갈까봐 공포에 떨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도쿄에서도 집값이 18% 정도 상승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영끌’ 매매는 없었다.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안정되기까지 일본은 혹독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버블기 5년 동안 일본 6대 도시 상업지 지가는 4배 넘게, 주택지 지가는 3배 가까이 급등했다. 당시는 일본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지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다. 명목 GDP가 1% 증가할 때 상업지 지가는 8% 상승했다. 지역을 6대도시에서 도쿄로 한정하면 이보다 훨씬 가파르게 급등했을 것이다. 그러나 버블이 꺼지자, 지가는 버블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장장 15년간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다.

최근 몇 년 한국에서 집값이 급등한 후 이제 하락하기 시작하자 일본식 붕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코로나 이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대답은 “일본과 같은 강력한 버블이 형성된 적은 없으니, 그렇게 강력한 붕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이 이상 버블이 형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였다. 지금은 “일본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붕괴는 아니겠지만 소득과 부동산 가격의 괴리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의 하락은 오히려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급격한 하락은 한국 경제 추락의 뇌관이 될 수도 있기에 급격한 하락 대신 완만한 하락 후에 정체기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낫다. 명목 GDP가 상승하면서 소득과 집값의 괴리가 줄어야 한다”고 답한다.

지난 5년간 한국의 명목 GDP가 1% 증가할 때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 가격지수는 4% 상승했다. 버블기 일본 정도는 아니지만 2000년대 초 미국의 버블과 비슷한 양상이다. 버블 붕괴 후 다시는 과거의 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일본과 달리, 미국에서는 2018년에 버블기 정점인 2006년의 집값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가격이 상승했다. 그래서 한국도 미국처럼 부동산이 더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모습은 버블 붕괴 후 미국보다는 일본을 닮아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결혼율과 출산율이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 가계가 금융자산보다 실물자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도 버블기 일본과 같다. 어느 나라나 가계 실물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이다. 현재 일본과 미국 가계의 실물자산 비중은 40%가 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80%에 육박한다. 버블기 일본의 64%보다 높다. 게다가 그 실물 자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과다하게 증가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계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금융자산에 대비한 부채 비율 역시 버블기 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가계 부채를 서서히 줄이는 대책이 절실한데, 여야 합의 없는 일방적 부동산 정책은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는 불신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당권 투쟁에 나선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고, 그래서 걱정이다. 한국에서 잃어버린 10년이나 20년이 시작된다면 그 뇌관은 부동산과 가계 부채일 수 있다.

#부동산#부채 과다#대책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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