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목조 없이 벽돌로… 사찰의 상식을 깨다[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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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제따와나 선원 전경. 전통 사찰의 개념을 담아 세 개의 단을 조성했다. 왼쪽 낮은 곳부터 오른쪽 높은 곳을 향해 각각
 세속의 영역(종무소와 숙소), 수행자의 영역(요사채), 부처의 영역(법당과 선원)을 구성했다. 박영채 씨 제공
강원 춘천시 제따와나 선원 전경. 전통 사찰의 개념을 담아 세 개의 단을 조성했다. 왼쪽 낮은 곳부터 오른쪽 높은 곳을 향해 각각 세속의 영역(종무소와 숙소), 수행자의 영역(요사채), 부처의 영역(법당과 선원)을 구성했다. 박영채 씨 제공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시간은 빨리 흐르고 세상은 늘 변한다. 그 변화에 적응하며 새롭게 혁신을 하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그래서 늘 공부하고 정진해야 한다.” 이 말은 석가모니의 마지막 가르침이라고 한다. 고행을 참아내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긍정하며 지금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따와나 선원이라는 불교 사찰을 설계하며 들었던 이야기이다. 제따와나(Jetavana·제타바나)는 석가모니 부처가 가장 오래 머문 장소로 ‘제따 왕자의 숲’이라는 뜻이다.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는 사람이 제따 왕자로부터 이 땅을 얻어 선원을 지은 덕에 한자로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부르는데, 일본 교토의 기온 거리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어떤 스님이 서울의 번잡함을 떠난 고요한 장소에 어울리는 사찰을 설계할 건축가를 찾던 중 우리와 인연이 닿아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덕분에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라는 종교와 사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정착하게 된 것은 4세기 즈음이라고 한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즉 서기 372년에 처음으로 사찰을 짓고 불교를 공인했다고 하니, 16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아는 형식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고려 말 지어진 부석사나 수덕사 등 남아 있는 건축물로 유추할 뿐이다.

잘 알다시피 불교는 인도에서 태동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고, 사찰의 형식도 중국의 목조 건축으로 시작되었다. 즉, 그 형식은 부처님이 살았던 시대의 인도 양식이 아니라 당시 우리의 보편적 구조였던 목구조 방식으로 번안되어 정착된 것이다. 거기에 불교의 교리를 해석하여 반영하고 종교적 의식이 이루어지는 동선과 위계에 의한 구성이 만들어졌다. 대체로 일주문, 천왕문에서 시작해서 보살단, 신중단을 거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 오랜 시간 사찰 건축의 전형으로 전해 내려왔다.

그런데 사찰의 설계를 우리에게 의뢰한 일묵 스님은 석가모니의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불교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많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원래의 취지나 가르침이 많이 달라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초기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다.

일주문 밖에서 선원 안쪽을 바라본 모습. 전통적인 한옥 모양의 사찰이 아닌 현대적인 건축미를 찾아볼 수 있다. 박영채 씨 제공
일주문 밖에서 선원 안쪽을 바라본 모습. 전통적인 한옥 모양의 사찰이 아닌 현대적인 건축미를 찾아볼 수 있다. 박영채 씨 제공
사찰이라고 하면 대부분 기와지붕에 목구조가 드러나는 전통 건축 형식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형식으로 짓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사회가 변했고 생활의 패턴도 변했다. 그래서 설계의 방향을 잡을 때, 과거의 방식과 불교적인 교리를 바탕에 깔되 현대적인 생활 습관에 적합하게 계획을 하고자 했다.

종교란 지향점은 각자 다르겠지만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이다. 절대자 혹은 진정한 가르침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며 높은 곳으로 이르러 우리가 걸어들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높은 곳에 이르러 절대적인 정신을 만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연의 나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의 불교 건축은 그런 길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탁월한 공간감을 드러내고 있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기보다는 휘어지고 꺾어지기도 하고 혹은 빙 돌기도 하며, 지세와 종교적인 교의가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건축적인 의상대사 ‘법성게(法性偈)’의 도상을 참고로 입체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보았다. 지금 여기서 가장 보편적인 구조인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바탕으로 최신 설비를 적용한 건축에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교리를 담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주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선원 안에서 일주문 쪽을 돌아본 풍경.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으로 내지 않고 세 번 꺾었다. 김용관 씨 제공
선원 안에서 일주문 쪽을 돌아본 풍경.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으로 내지 않고 세 번 꺾었다. 김용관 씨 제공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전통 사찰의 배치 개념을 담되 외관에서는 외벽으로 기원정사 유적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벽돌을 제안했다. 대신 화엄사의 가람(伽藍) 배치의 방식을 고려해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으로 곧장 가지 않고 가면서 세 번 꺾어 들어가게 했다. 대지의 원래의 높낮이를 이용해 세 개의 단을 조성하여 순서대로 세속의 영역(종무소와 숙소), 수행자의 영역(요사채), 부처의 영역(법당과 선원) 등 위계에 맞게 건물을 올려놓았다.

물론 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낡은 것에 집착할 때 불협화음이 생긴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을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혁신은 많은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생경한 형식의 사찰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에서 만난 많은 공무원과 심의위원들이 “사찰에 왜 기와지붕을 올리지 않았는지, 즉 한옥으로 짓거나 한옥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아 설득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년 만에 완성된 제따와나 선원은 한국의 종교시설로는 최초로 2020년 아시아건축사협의회에서 주는 건축상(ARCASIA Awards)을 받았다.

종교의 사전적 의미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 시설들은 대체로 나약한 인간들이 절대자에게 감응할 수 있는 권위와 위엄을 갖춘 형식을 선호하곤 한다.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즐거운 중도의 정신이 안과 밖에 스며든 공간으로 완성한 제따와나 선원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만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해진 현대 종교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사찰 형식#제따와나 선원#현대적 건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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