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연회장에 모인 1200명의 하객이 순간 조용해졌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J M 쿳시의 소감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그는 단편소설을 무미건조하게 읽는 것으로 수상기념 연설을 대신했다. 예전에는 부커상을 두 번이나 탔으면서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성적이고 과묵한 작가였다. 하객들이나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별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쿳시는 그의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을 거라는 자신의 파트너 도로시 드라이버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그녀의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고 했다. “내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아흔아홉 살이었을 거야. 아마 치매에 걸리셨겠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셨을 거야.” 물론 그도 어머니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노벨상에 이르는 일들을 누구를 위해 하겠습니까?” 어머니를 위해 글을 써왔다는 엄청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아이라고 가정하고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펼쳐보였다. “엄마, 엄마, 나 상 탔어!” 그의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장하다, 우리 아들. 자, 식기 전에 당근 먹어라!” 관객들이 그의 유머에 웃었다. 상을 탔다고 자랑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응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은 것이다. 웃음이 끝나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째서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가 일으킨 말썽들을 만회할 수 있는 상을 타서 집으로 달려갈 수 있기 전에 아흔아홉 살이 되어 무덤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하객들은 그 말에 밴 그리움에 목이 메었다.
쿳시가 전하는 바람과 나무의 탄식, 풍수지탄(風樹之嘆). 그의 어머니는 18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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