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존경합니다[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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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믹 잭슨 ‘템플 그랜딘’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1947년 미국에서 태어난 템플 그랜딘은 4세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저능아로 살 거라는 의사의 경고에 굴하는 대신 딸의 가능성을 믿은 어머니의 뒷바라지 덕분에 그랜딘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다. 타인과의 감정 교류가 어렵고, 독특한 행동은 놀림의 대상이지만 상황을 언어나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두각을 나타낸다. 동물을 좋아한 그녀는 소들을 오랫동안 관찰해 소의 특성을 발견한다. 기존의 도축장이 소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는 걸 알아챈 그녀는 소들이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도축장을 설계한다. 예민한 소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도록 부드러운 곡선과 완만한 경사로를 갖춘 도축장은 현재 북미 대륙의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

성인이 된 후 그랜딘은 일반적인 자폐보다는 경증인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새 진단명을 받는다. 동물학 박사 학위를 따고, 책도 여러 권 냈다. 그녀가 쓴 책을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날 ‘졸업’이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학교의 정문을 수없이 들락날락했지만 끝내 실패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한 추상명사나 ‘아름답다’와 같은 형용사는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고 한다.

내게는 조카보다 가까운, 친구의 아들이 있다. 자폐라는 이유로 일반 초등학교 입학이 어려워져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지금도 막역하다. 울 엄마는 내 친구가 아이 때문에 고생한다며 절대 싸우지 말고 항상 져주라며 잔소리를 하셨고, 나도 이 친구 앞에서는 성질을 확 죽이고 지내 왔다. 이 친구를 통해 자폐아를 둔 엄마들을 여럿 만났는데 놀랍게도 다들 활기찼다. 어쩌면 주어진 시련에 맞서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아서일까? 그래서인지 이 친구랑 있으면 박장대소할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삶의 기대치가 소박해서일까? 살면서 진짜 소중한 게 뭔지를 알기에 그 이상은 탐하지 않는 자세가 나까지 투명하게 만든다.

자폐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천재급의 자폐인을 다룬다. 그랜딘은 기적 같은 존재이고, 대다수의 자폐인은 24시간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할 형편이라 그 가족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다. 영화 속 장애인을 보며 눈물 흘리고 응원해도 막상 자기 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는 건 반대하는 우리들이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야, 너 나랑 친한 게 우리 집 전망이랑 내 요리 때문이지?” 전망이 후진 저택보다는 창밖이 트인 옥탑방을 선호하며, 먹는 낙을 최고로 삼는 나를 잘 아는 친구다. “당연하지!”라고 하자 입술을 삐죽인다. 숨겨놓은 답은 따로 있다. 나는 너를 존경한단다. 이 글을 친구가 볼까 봐 걱정이다. 기세등등해질 텐데….

#믹 잭슨#템플 그랜딘#자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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