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220억 달러(약 28조9000억 원) 규모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리는 바람에 화상을 통해 진행된 면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SK가 내놓은 투자 계획을 “역사적인 발표”라고 환영하면서 “생큐”를 10차례나 연발했다.
이번에 공개된 SK의 대미 투자 규모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에 150억 달러, 그린 에너지 분야에 50억 달러, 의약품 등 바이오 산업에 20억 달러다. 이미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투자하기로 한 70억 달러를 합하면 투자 규모는 300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SK가 향후 5년간 배터리·바이오·반도체 등 이른바 ‘BBC 산업’에 투자할 예정인 247조 원 중 상당 부분이 미국에 투자되는 것이다.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하고, 현대차가 55억 달러가 투입되는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을 포함해 총 1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한국 대기업의 대미 투자 규모가 커지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날로 격화하는 미중 신냉전, 반도체 분야의 대미 기술·장비 의존성, 자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우대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 등을 고려할 때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가 급증하는 만큼 한국에 생산시설을 짓는 외국인들의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해외 투자에서 외국인의 한국 투자를 뺀 ‘투자 순유출액’은 계속 급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규제 환경, 갈등적인 노사 관계,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세제 등이 투자 순유출의 이유로 꼽힌다. 정부가 규제 혁신, 노동 개혁의 속도를 높여 외국 기업들이 투자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올 만한 기업 환경을 서둘러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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