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박정희 정부 시절 내려진 긴급조치 1호에 대해 대법원은 2010년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에 대해 이른바 ‘통치행위’라며 법원 스스로 사법심사권의 행사를 억제해 그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통치행위라 해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하고 그에 위반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해도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면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2004년 이라크 파병에 대한 위헌 소송에선 “대통령과 국회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결정한 것이므로 헌재가 사법적 기준만으로 심판하는 건 자제돼야 한다”며 “대통령과 국회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 평가와 심판을 받으면 된다”고 각하했다.
한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가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살인죄 등 혐의로 고발하면서 문 전 대통령도 퇴임 두 달 만에 수사선상에 올랐다. 문 전 대통령이 대북관계 개선 등을 고려해 탈북 어민에 대한 ‘북송’ 판단을 최종 승인했다면 이 같은 통치행위를 사법처리 대상에 올릴 수 있는지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두 최고 사법기관의 결론은 달랐지만 통치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근거했는지 따져야 한다는 부분은 같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의 방향도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켰다는 고발 내용을 포함해 북송 결정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사안을 명확히 규명하기 쉽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헌법상 우리 국민인 이들을 최소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북송한 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북송된 탈북 어민은 동료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고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북한이탈주민법에는 탈북민을 인도주의에 입각해 특별히 보호한다는 원칙이 있다.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의 경우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도 있지만 북한 송환 절차에 대한 규정은 없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안보실 매뉴얼에 따라 북송을 최종 결정했다면 문 전 대통령이 정 실장의 보고를 받은 것만으로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긴 어렵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문 전 대통령이 의무에 없는 일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새 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겨냥해 캐비닛을 뒤지고 정치 보복성 수사가 되풀이되는 데 국민들은 더 이상 박수 치지 않는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개인 비리 등 명백한 불법행위가 아닌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해선 퇴임 후 문제 삼지 않는 관행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헌재 결정문 대목처럼 대통령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 평가와 심판을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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