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묻는 질문이 바다에도 길이 있냐는 것이다. 크게 보면 항로라는 길이 있다. 두 지점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길을 다녀야 경제적이다. 그래서 선박은 싱가포르, 부산을 거치면서 일본의 본토와 홋카이도 사이에 있는 쓰가루해협을 지나 알류샨열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알래스카를 따라 미국 서안으로 내려온다. 대권항로이다. 이와 같이 바다에는 선박이 다니는 길이 있다. 그런데 이 길은 4차로 도로처럼 차선이 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넉넉한 바닷길이다. 그 어딘가를 항해하면 된다.
해도상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연결하는 선을 그어서 그 위를 선박이 항해하게 된다. 그 선을 코스라인이라고 한다. 고교 1학년 때 신문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무언가 배에서 일하는 모습이었다. 배가 다닐 길인 코스라인을 생성하는 작업이었다. 잣대를 가지고 연필로 항로를 선정하는 그의 모습.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는 해양대에 가서 선장이 될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항해사가 되고 나서 수많은 그 장면을 나도 오나시스처럼 연출하게 되었다.
항해사는 선장이 정해둔 코스라인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박을 한 바퀴 돌리면 원코스라인에서 500m는 족히 벗어나게 된다.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항해사는 그렇게 애를 쓴다. 선장은 말한다. “이 넓은 바다에서 500m는 원항로와 차이가 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 위치에서 바로 항해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바다는 너무 넓기 때문에 모두 우리 집 안마당처럼 사용하면 된다. 그로티우스가 말한 항해의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다. 육상의 도로에선 차선을 벗어나면 충돌사고가 나고 경찰이 나타나서 벌칙을 가한다. 그렇지만, 공해는 인류 모두의 것이고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자유가 우리에게 허용된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 항로라는 길을 내었을까? 콜럼버스, 마젤란, 캡틴 쿡 등 수많은 항해 선배님들이 미지의 세계를 찾아 바다를 항해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로그북에 남겼다. 후배들이 이를 참고로 또 이어서 항해를 했다. 어떤 항로는 위험해 풍랑을 만나 수많은 선장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번 성공적으로 다녀온 길은 안전한 것으로 인정되어 항로가 되었다. 우리 태극기를 단 상선을 타고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넌 선장은 박옥규 제독이었다. 선장을 하다가 해군에 입문한 당대 최고의 선장 박옥규를 불러서 정부는 중고선인 고려호의 태평양 횡단을 맡겼다. 그가 성공한 항로는 안전한 것으로 인정돼 후배 선장들이 계속 사용하고 있다.
장보고, 콜럼버스 등 용기 있는 선장들의 죽음을 무릅쓴 항해가 수천 년간 축적되면서 안전한 항로가 확립되었다. 그 항로가 있었기에 무역이 존재하고 오늘의 세계경제가 있다. 선원들을 왜 그렇게 존경하고 바다산업을 보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항로’는 유네스코에 등재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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