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다 잠들고 싶다[광화문에서/김선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30일 03시 00분


김선미 산업1부 차장
김선미 산업1부 차장
“어디에 가면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을까요.”

올해 초 페이스북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별 보기가 꿈이라고 하자 친구들이 성심껏 ‘별 성지’들을 추천했다. 하지만 어디든 자동차 불빛이 몰리면 허사라고 했다. 최근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이 보여준 135억 년 전 별들의 사진을 보다가 다시 그 꿈이 꿈틀댔다. “제 꿈은요”라고 말하자, 어느 천문 전문가가 경북 영양반딧불이천문대를 알려줬다. “남한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라 별 보기 좋을 겁니다. 다만 달 없는 그믐, 산신령 감읍하사 맑은 날 주셔야….”

그믐이 며칠 남았고, 구름도 예정돼 있었지만 직장인은 주말을 노릴 수밖에 없다. 단,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진짜로 별을 본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마음먹었다.

서울에서부터 200km 넘게 달려간 천문대는 국제밤하늘협회(IDA)가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한 영양반딧불이생태공원에 있었다. 빛 공해가 없어 온통 칠흑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기적이 일어났다. 구름이 잠시 걷히더니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이 사방에 총총. 크고 작은 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났다.

대표적인 과학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저자인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과 그의 아내 앤 드리앤(73)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고 했다. 으스댈 것도, 기죽을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들이 코스모스를 공동 저술하던 1980년, 다정하게 마주 보며 걷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천생 영혼의 동지다. 세이건은 책의 서문에 썼다. ‘광대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함을 기뻐하며.’

둘을 맺어준 것은 우주였다. 1974년 영화감독 노라 에프론이 마련한 파티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의 골든디스크 작업을 함께 했다. 지구의 소리를 담아 혹시 존재할지 모르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 보내겠다는 세이건의 상상력을 드리앤이 구현했다. 녹음하기 가장 어려웠다는 인간의 키스 소리까지도…. 드리앤은 말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유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 호기심이 정확히 같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인류애는 위대한 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 세이건은 떠났지만 드리앤은 과학 저술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를 이끈다. 코스모스 출간 40년 만인 2020년 속편으로 내놓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서는 미래의 재앙을 경고하는 동시에 희망을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의 장기적 관점으로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화면에서 눈을 떼어 별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디지털 세상은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를 얼마나 편협한 시각에 가두던가. 어느 날 문득 한숨이 깊어진다면 별을 만나러 가시기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영혼의 동지별을 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이건과 드리앤은 한 사람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숙하려면 효율적인 과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쏟아지는 별을 헤다 잠든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별#코스모스#디지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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