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의 무역수지가 넉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이 늘었기 때문인데 4개월 연속 적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만큼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 적자 폭은 4∼6월의 갑절로 커졌다. 1∼7월 누적 적자는 150억2500만 달러(약 19조6000억 원)로 이미 연간 기준 66년 만의 최대다. 특히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3개월 연속 적자를 낸 것이 문제다. 5, 6월에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중국 주요 도시들이 봉쇄되고, 생산시설도 멈춰서 한국산 중간재를 덜 사갔지만 7월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끝나도 대중 무역적자 구도가 고착화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대중 무역수지는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흑자로 돌아선 뒤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유지해 왔다. 대중 수출 품목의 90% 정도는 중간재로 한국이 만드는 반도체의 60%는 중국, 홍콩이 사간다. 하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중간재 수요는 줄고 있다. 필요한 반도체의 70%를 자국에서 생산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은 미국 견제로 차질이 빚어지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뺀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 위탁생산에서 중국이 이미 한국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반면 중국 원자재에 대한 한국의 의존은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는 각각 40%, 90% 수준이다. 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생산소재 수출을 규제한 후 3년간 대일 소재·부품·장비 의존도가 낮아진 반면 중국에 대한 의존은 더 커졌다.
무역적자에서 시작된 파열음은 30여 년간 유지된 한국의 수출 체제, 경제 전체의 수익구조에 탈이 났다는 신호다. 국제유가, 원자재 값이 내려 무역수지만 개선되면 멀쩡히 회복될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 중심으로 짜여진 우리 경제의 수출·수입 시스템을 근본부터 뜯어고칠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 체계를 놔두고 상황이 나아지기만 바라다간 미중, 미-러 신냉전과 그로 인해 재편되는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수출 주도형 국가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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