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 이후 23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고 통계청이 어제 밝혔다. 올 1월 3.6%였던 물가 상승률이 반년 내내 상승하며 연초의 1.8배 수준에 이른 것이다.
올 초반만 해도 물가 상승세는 석유류, 외식비 등 일부 품목에 국한됐고 상승률도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석유류, 농축산물, 공공요금, 가공식품, 외식비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데다 상승폭 자체도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할 정도로 크다. 향후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기대심리가 커지면서 개별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오르고 그 여파로 전체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금의 물가는 각종 요금 인상 제한이나 세금 인하 같은 국지적 조치만으로는 잡을 수 없는 속도로 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칫 기준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다가 오히려 문제만 키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인플레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그 결과 실질소득이 급감하면서 전체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 국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 대신 조금씩 올리는 ‘베이비스텝’에 무게를 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추가적인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물가는 9, 10월경이 정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미국이 연내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등 글로벌 인플레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국면에서 당국이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한은과 정부는 최근 국제유가 하락세를 근거로 조만간 물가 안정이 가능하다고 보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주요 산유국의 증산이 더디고 러시아와 유럽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되는 등 유가 리스크는 여전하다. 폭염과 장마로 농축산물 가격은 폭등하는 중이고, 외식 여행 등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세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종잡기 어렵다. 지금은 세계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운 불확실성의 시기다. 물가 당국이 하루하루의 가격 동향에 일희일비한다면 위험에 대비하기 어렵다. 지나친 비관론도 금물이지만, 지금은 긴 안목으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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