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재발견[삶의 재발견/김범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5일 03시 00분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암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환자분들로부터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일반적으로 고단백 고열량 식사가 중요하니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권하지만, 정작 나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공장식 축산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는 고기를 먹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대다수 채식주의자의 논리를 들어보면 그들의 논리는 타당하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본래 육식을 많이 하지 않았고, 실제로 현대의 과도한 육식이 각종 성인병과 심장 질환, 암을 일으키고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 오염도 심각하다. 말 못 하는 동물이 좁은 케이지 안에서 학대받다가 대량 학살되는 모습을 보면 고기 외에도 먹을거리가 풍부한 지금 같은 시대에 굳이 고기를 그렇게까지 많이 먹어야 하나 싶다.

물론 반대 견해의 논리도 타당하다. 채식만으로는 필수 영양소를 채우기 어렵고 잘못된 채식으로 건강을 잃은 사람도 많다. 고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양질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원천이며, 인류는 가축화 가능한 대형 포유류가 생기면서 굶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다. 과도한 육식이 성인병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육식보다도 혈관 속에 지방이 쌓이게 하는 식단이나 운동 부족이 더 문제다. 동물의 죽음이 불쌍하다면 자연 친화적 유기농 축산 등 다른 대안도 많다.

채식주의자는 고기 먹는 사람을 비판하고, 고기를 먹는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너무하다고 하소연한다. 개인의 신념은 존중받아야겠지만 자신의 신념을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간섭하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태도가 지나치면 서로가 불편해진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세상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극단적인 채식도 극단적인 육식도 건강에는 좋지 않고, 서로에 대한 비난이나 증오도 건강에 해로운 건 마찬가지다.

이러한 지루한 논쟁 속에 놓쳐버리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먹는 것이 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우리는 무언가의, 또는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먹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소, 돼지, 닭은 제 생명을 나에게 내주었고, 하나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다. 1만 원 내고 한 끼를 먹는다고 해도 그 같은 희생이 1만 원어치는 아니다. 나는 그 희생을 딛고 살아왔고, 그런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나 역시 다양한 활동으로, 나의 무언가를 내줌으로써 누군가의 생존을 돕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희생을 딛고 얽혀 살고 있다. 우리 각자의 생존은 누군가의 또는 무언가의 희생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식#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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