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 종료를 앞두고 정부가 내놓은 채무조정 방안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정면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기 연체자의 대출 원금을 최대 90%까지 깎아주는 정부안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뿐 아니라 금융부실을 키우는 잠재적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안의 핵심은 30조 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금융권이 조성해 자영업자·소상공인 중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 차주’의 대출 원금을 60∼90% 깎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실행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모인 은행 관계자들은 감면 폭이 너무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감면율을 10∼50%로 낮출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 10일만 연체해도 ‘부실우려 차주’로 판단해 장기 분할상환으로 바꿔주고, 금리를 낮추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금융위가 지난달 이 방안을 내놨을 때부터 문제가 예상됐다. ‘자율적’이란 표현을 썼지만 채무자가 요구하면 금융회사가 대출금 95%까지 만기를 늘려주게 한 건 관치(官治)의 전형이다. 장기 연체자라 해도 90%까지 빚을 없애주면 성실히 빚을 갚은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부실우려 차주 기준이 낮다 보니 일각에선 일부러 상환을 연체해 이자를 줄이는 방법을 공유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청년 연체자의 이자를 감면하고, 만기를 늘리는 프로그램 역시 “빚내서 가상화폐, 주식 투자해 날린 돈을 세금으로 메운다”는 논란을 불렀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자영업자 등의 채무를 조정해줘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금-대출 금리 차가 커져 역대 최대 이익을 낸 금융회사들도 고통을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채무조정 방안은 지원 수준이 과도해 모럴 해저드를 키우고, 금융산업의 근간인 신용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 자생력을 잃었는데도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좀비 기업’을 늘릴 우려도 있다. 정부는 금융권이 제기하는 합리적 의견들을 수용해 채무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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