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중부 지방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했다. 물이 급격히 들어차는 반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40대 자매와 13세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자매 중 1명은 발달장애인이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또 다른 반지하 주택에서도 50대 여성 1명이 사망했다.
반지하에 거주하던 수해 희생자들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밀려드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을 것이다. 신림동의 이웃 주민들이 방범창을 뜯어내려 팔을 걷어붙였지만 끝내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수압 때문에 현관문조차 열리지 않는 반지하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다 숨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주거용 반지하는 일부 불법 개조 건축물 외에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열악한 생활공간이다. 햇볕이 부족하고 환기도 잘 안되는 눅눅한 환경에서 거주자들은 습기와 퀴퀴한 냄새, 곰팡이, 벌레와 싸워야 한다. 외부 보안이 취약하고 폭우 시 물에 잠길 위험도 크다. 외신들은 ‘banjiha’를 고유명사처럼 쓰면서 한국의 폭우 피해를 전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참사에 대해 “영화 ‘기생충’ 속 폭우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결말은 더 최악”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32만7320가구(2020년 기준)에 이른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집값이 비싼 서울에, 서울 내에서도 침수 피해가 잦은 관악구와 동작구 등지에 몰려 있다. 수백만 원의 보증금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호화 아파트와 마천루가 들어선 세계적 도시 서울의 어두운 그늘이다.
최소한의 안전조차 담보할 수 없는 반지하의 열악한 상황을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피해는 앞으로 더 커지고 잦아질 것이다. 신림동 일가족이 당한 참변이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
서울시는 어제 주거 목적의 반지하 사용을 전면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는 순차적으로 없애거나 창고, 주차장으로 전환토록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개선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번에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속도감 있는 이행과 함께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확보 등 주거 대안도 함께 제시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국민이 반지하 주택에 갇힌 채 목숨을 잃는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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