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울의 거리에서 너바나의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그걸 보며 든 생각은 이랬다. ‘로고가 90년대 분노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록 밴드라는 건 전혀 모르겠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가 유행했을 때처럼 말이야.’ 그저 쿨한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표처럼 남아 그 속의 의미와 가치는 완전히 제거된 듯 보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 세대가 너바나의 리드 싱어인 커트 코베인(1967∼1994)이 죽었다는 소식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며 함께 울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나보다는 이토록 불안정한 팬데믹의 시대를 거쳐 가는 젊은이들이야말로 그의 노래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연유로 이번엔, 저 90년대의 록스타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번 해 봤다.
1994년 4월 5일, 한 피자 배달부가 무의식 상태로 쓰러져 있는 코베인을 발견한다. 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시애틀 경찰이 출동하여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간다. 코베인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록스타는 재빨리 버지니아 메이슨 메디컬 센터로 옮겨져 수술을 받는다. 결과는 대성공. 그가 자신에게 쏜 총알은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다. 대신 오른쪽 눈의 신경을 잃는다. 자살 시도 이후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 유명 음악 잡지 NME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다. 또 다른 음악 잡지인 롤링스톤의 5월호에는 피자 배달부의 인터뷰와 함께 이런 제목이 걸린다. “너바나의 팬, 록스타의 목숨을 구하다.” 1994년 6월, 코베인은 아내 코트니 러브와 이혼한다. 러브는 위자료로 320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 후, 러브는 런던 한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된다. 사망 원인은 알코올과 약물 과다 복용. 전남편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커트 코베인이 자살 시도 후 처음으로 발매한 곡의 제목은 ‘Hey, Hey, My, My’. 포크 음악가 닐 영이 쓴 노래다. 이 노래의 가사가 자살을 시도했던 코베인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점점 사라지는 것보다는/한 번에 연소하는 게 나아’
이 곡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차트에 올라 48주 동안 1위를 차지하고, 이를 계기로 1996년에 새로운 밴드 ‘더 위어드 다크니스’를 결성한다. 그해, 코베인은 약물을 끊는다. 새 밴드 홍보 투어 중, 록스타는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를 만난다. 1998년 말에 코베인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같은 해 그는 너바나의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를 허락 없이 사용한 향수 회사를 자본주의의 돼지라며 비난하고 고소한다. 2002년, 코베인은 또 한 번의 이혼을 경험하고 솔로 음반 ‘영 도그 다이즈’를 발매하지만, 완벽히 실패한다. 2009년에 그는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와 총 13곡이 담긴 음반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를 발매하는데, 이 음반으로 말하자면 평단으로부터는 엄청난 혹평을 받지만,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는 당시 스타인 블랙 아이드 피스와 함께 불렀고, 심지어 영화 ‘트랜스포머’의 OST에 삽입되기도 한다.
2017년, 코베인은 5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이라는 향수를 론칭한다. 발매하자마자 향수는 100만 개가 순식간에 판매되고 이에 고무된 코베인은 같은 이름으로 샴푸와 디오더런트(deodorant)도 내놓는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유명 인사 중에는 독일 자동차 재벌의 딸인 주자네 클라텐이 있었는데, 3일 뒤 둘은 결혼을 한다. 이후 이 부부는 ‘로열 록스타’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다. 2019년 초, 코베인의 목숨을 살린 전직 피자 배달부가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나오던 록스타를 살해하려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당시 코베인이 함께 식사하던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였다. 피자 배달부는 43년형을 선고받는다.
2020년, 코베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비디오를 하나 올리는데, 이 덕분에 코베인의 팔로어는 4억 명에 육박하게 된다. 그 비디오에서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부의 음모라며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300명을 초청하여 파티를 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날, 파티에 온 사람 중 250명이 확진된다. 일주일 후, 확진자 중 한 명이었던 코베인은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다가 마침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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