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말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층간소음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하며 “건설사가 바닥 두께와 인테리어 등을 책임지고, 거주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더 주면 된다”고 말했다. 주택 정책 주무 부처 장관이 구체적인 숫자까지 말한 사안이니 대다수 언론이 ‘정부가 층간소음 대책을 마련한다’고 원 장관 발언을 담아 기사를 썼다.
그런데 ‘8·16공급대책’에서 층간소음 대책은 보도자료에 단 7줄 언급됐다. 18일 별도로 발표된 ‘층간소음 저감대책’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장관이 공언했던 용적률 인센티브는 ‘높이제한 완화를 추진한다’고 명시된 것에 그쳤다. 당장 현장에서는 “뭘 언제 어떻게 푼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대체 대책이 맞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8·16공급대책의 다른 대책들도 ‘언제’ ‘어떻게’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는 면제기준이나 부과율 등 앞으로 어떤 항목을 완화할지만 언급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9월 중 발표한다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9월에 대안이 나온다고 해도 올해 안에 진척이 있을지 불확실하다.
정부의 시행령·규칙 개정으로 도입이 가능한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시행 시기 등 최적 대안을 연말까지 제시한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역시 대선 공약이었던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은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하겠다”고 딱 한 문장 언급됐다. 장관과 대통령이 지방선거 전에 잇달아 건설현장을 방문했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는 실질적인 목표 없이 “기존 완공·착공 시점보다 앞당기겠다”는 ‘구호’만 들어가 있다.
이렇게 실행 방안이 모호하니 결과물인 공급물량 역시 손에 잡히지 않는다. 2023∼2027년 서울에서 정비사업으로만 24만 채를 공급하는데, 이 중 신규 지정 물량이 10만 채다. 14만 채는 기존 사업 속도를 높여 공급해야 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 재건축 추진 단지는 이에 못 미치는 약 11만8000채 규모다. 사업이 끝난 뒤 늘어날 물량, 집계가 어려운 재개발 물량을 고려해도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다. 나머지 서울 물량 중 공공택지 5만 채를 제외한 ‘기타 민간 아파트’ 5만 채, ‘기타 민간 비아파트’ 15만 채는 ‘민간 자체 추진 사업’으로만 표기돼 있다. 어디에 어떻게 공급되는지, 요즘 같은 시장 침체기에 제대로 공급이 될지도 확실치 않다.
물론 시장 상황이 불확실해 섣불리 규제를 완화한다고 발표하거나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밝히기 어려운 면도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향후 5년간 어떤 정책을 펼칠지 일종의 계획표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가 빠져 있는 계획표가 제대로 실천되리라 믿기는 어렵다. 원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주택공급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이번 대책이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계획인지, 원 장관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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