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칩4’ 동참 논란이 남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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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급 회의 칩4 두고 한 달 고심
과한 우려로 中 위협 표적 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개방과 윈윈(win-win)을 견지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해야 한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이 이른바 ‘칩(Chip)4’ 동참을 결정한 사실을 통보하자 ‘한국 측이 적절하게 판단해나갈 것을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 미국 주도 칩4 회의에 참가하면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한 달 가까이 칩4 동참을 두고 고심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칩4 동맹을 제안한 미국에선 이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반도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칩4 동맹이라는 얘기는 한국을 통해 처음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미국이 한국에서 칩4 회의로 알려진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회의를 제안한 것은 1년 전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기업을 백악관에 초청해 반도체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던 때다. 주무 부처인 상무부가 반도체산업 육성법으로 주도권을 쥐자 국무부는 글로벌 동맹국과 반도체 협력 강화를 추진하며 한국, 일본, 대만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우선순위가 미국 내 반도체산업 육성에 맞춰진 탓에 이 아이디어는 1년이 다 되도록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등 아시아 순방에 나서기로 하면서 이 아이디어가 다시 부상했다고 한다.

미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9월 초 열릴 칩4 회의는 주로 과장급이 참여해 반도체 인력 양성, 연구개발(R&D) 투자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실무급 조정회의여서 반도체 동맹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룰 가능성은 낮다. 한 소식통은 “한국과 일본, 대만의 반도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4개국이 공개 석상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주제는 한정적”이라며 “반도체 동맹 구상 같은 핵심 의제는 양자 협의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한 반도체 동맹을 구상한다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미중 긴장이 전방위적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신중히 국익을 따져 국내 기업 피해를 예방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럼에도 칩4 동맹 논란에 대한 정부 대응은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이 한국에 칩4 회의 참여를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는 실체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 대신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국내에선 칩4가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 구상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한국의 칩4 동참 시 경제 보복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번졌다.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국이 칩4의 실체를 모르진 않았을 터다. 중국 경제 보복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오히려 한국을 손쉬운 위협 상대로 만든 것은 아닐까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고심하는 동안 일본은 미국과 첨단반도체 공동 개발에 합의했고 대만은 반도체 협력을 핵심으로 한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 협상 개시를 선언하며 더 과감한 행보에 나섰지만 중국 경제보복 위협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미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 협력에 합의한 마당에 한국이 실무급 회의에 참여하는 것까지 중국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었는지 의문이다.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무리하게 균형을 잡으려다간 비바람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미중 경제패권 전쟁은 이제 시작됐다.

#왕이#칩4#칩4 동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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