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11월 20일 개막 예정인 카타르 월드컵은 대회 사상 처음으로 이슬람 국가에서 열린다. 카타르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현장에서 체포 및 구금될 수 있고 3000리얄(약 110만 원)의 벌금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 팬들 중에는 애주가도 많다. 경기장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거나 경기 전후 인근 식당 등에서 한잔하면서 기분을 내는 이들도 많다. 2014년 월드컵 개최국 브라질과 2018년 개최국인 러시아도 평소에는 경기장 음주를 금지했다. 술에 취한 팬들의 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질과 러시아 모두 월드컵 기간에는 경기장에서의 음주를 허용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개최국들에 압력을 가하거나 회유함으로써 경기장 음주를 관철해 왔다. 영국 BBC에 따르면 2014년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이 경기장 금주 규정을 개정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당시 제롬 발크 FIFA 사무총장은 “음주는 월드컵의 일부다. 월드컵에서는 음주가 허용돼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맥주는 축구팬들의 삶의 일부였으며 지금까지 개최해 온 모든 곳에서 맥주가 허용됐다”며 경기장 금주를 풀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축구와 술, 특히 축구와 맥주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 팬들의 맥주 사랑은 유별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28년 만에 4강에 진출했을 때 잉글랜드 팬들은 일제히 공중에 맥주를 뿌려대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영국 ‘더 선’ 등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의 4강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영국 전역에서 1000만 파인트(약 568만 L), 약 3000만 파운드(약 475억 원)어치의 맥주가 팔렸다. 러시아 월드컵 기간 영국 내 맥주 판매량은 4000만 파인트(약 2270만 L), 1억2000만 파운드(약 1900억 원)어치에 이른다. 월드컵 기간 일일 맥주 판매량이 평년의 2배를 넘기는 날이 많았다.
월드컵이 맥주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면서 맥주회사들도 월드컵을 크게 후원해 왔다. 후원 금액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를 좀 더 흥겹게 즐기게 한다는 점에서 영국은 평소에도 경기장 내 매장에서 음주를 허용해 왔다. 국내 프로축구 K리그도 경기장에서의 음주를 허용한다. 하지만 흥분하기 쉬운 경기장에서의 음주 행위가 위험하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경기장 내 음주 규정은 나라마다 다른데,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경기장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음주를 허용하는 것이 큰 흐름이었다. FIFA 고위 인사들은 지금까지 축구장에서의 음주를 팬들의 축제 분위기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모양새를 취해 왔다. 맥주회사들의 막대한 후원 금액을 무시할 수 없는 속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월드컵의 음주 정책이 새로운 실험에 들어간다. 음주를 동반해 온 대규모 축제가 근본적인 금주문화를 지닌 국가에서 처음 열린다. 문화적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때도 이슬람교도가 많은 카잔 지역에서 경기가 열렸을 때 경기장에서 술을 파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카타르의 경우 술 판매를 대폭 허용하면 월드컵의 상업 논리에 휘말려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신문화와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국 축제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정서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 기간 100만 명 이상이 카타르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타르는 평소 엄격한 통제 아래 일부 지정된 호텔과 장소에서만 술을 마실 수 있게 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는 카타르가 경기장 내에서의 음주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평소 허가된 호텔 외에도 공원 등을 새로 지정해 하루 중 일정한 시간대에만 음주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지만 공식 발표는 미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회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이 문제는 계속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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