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에 막힌 규제개혁… “부처별 전문조직 키워 풀어가야”[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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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정부 규제개혁 용두사미, 왜?
전봇대-손톱밑가시-모래주머니… 정권 초마다 “규제 없앤다” 목청
이명박 매달 회의 주재했지만… 신설된 규제, 폐지보다 더 많아
文정부 ‘사후규제’ 도입에도… 작년 기업 만족도 72점에 그쳐

박희창 경제부 기자
박희창 경제부 기자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규제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도약과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은 17일 다시 한번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후보 때부터 규제를 ‘모래주머니’에 빗대며 규제 혁파 의지를 드러냈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 말 교육, 복지, 보건, 산업 등의 분야에서 140건의 규제개선 조치를 끝냈다고 밝혔다. 703건의 규제에 대해서도 소관 부처가 개선 조치 중이다.

규제개혁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이미 10년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마다 출범 초 규제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노조, 이익집단 등의 반대에 가로막혀 현장이 체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실상 ‘용두사미’로 끝났다. 규제개혁을 “쉼 없이 5년 내내 추진하겠다”고 밝힌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는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산업계를 비롯한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 정권 초마다 되풀이되는 ‘규제개혁’

이명박 정부는 규제개혁을 국정 최고 어젠다로 내세워 관리했다. 특히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규제개혁을 위해 2008년 3월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당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기존 규제개혁 중 파급효과가 큰 핵심 규제나 여러 부처가 관련된 덩어리 규제개혁을 맡았다. 대통령이 매달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주요 규제개혁 과제를 논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3년여가 지난 뒤에는 오히려 해당 연도에 새로 도입된 규제 수가 폐지된 규제보다 더 많아졌다. 정부는 2009년 대대적인 규제 정비를 위해 ‘주 규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부수 규제’로 구분했는데, 2011년 8월 기준으로 신설된 주 규제가 폐지된 주 규제보다 6건 더 많았다.

박근혜 정부는 덩어리 규제보다는 숨어 있는 규제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표현한 것이 ‘손톱 밑 가시’라는 문구였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없애고 ‘손톱 밑 가시’ 과제를 선정 검토하기 위해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을 신설했다. 규제개혁장관회의도 새로 만들어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당시 정부는 2013년 12월 말 1만5265건이던 등록규제(중앙부처가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는 규제)를 임기 내 2009년 수준(1만2867건)으로 20%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2015년 7월 기준 규제정보포털에 등록된 규제 건수는 1만4688건이었다. 당시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약 1년 전인 2014년 8월 1만4976건에서 288건 줄어든 것으로 감소율은 2%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 70점에 그친 규제개혁 만족도
다른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개혁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 후 4개월 만에 규제개혁 추진 방향을 내놓았다. 특히 신산업, 신기술 분야의 규제 혁파를 주요 추진 전략으로 정하고 2019년 4월 행정규제기본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신산업, 신기술에 대해선 사업을 우선 허용한 뒤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원칙이 도입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업그레이드해 추진하기로 한 ‘규제 샌드박스’도 이때 시행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은 기업이 허가를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일정 기간 관련 규제를 면제 혹은 유예해 주는 제도다. 2019년 제도 시행 이후 올 1월까지 총 632개 과제가 승인됐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규제 철폐 등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는 전체의 20.4%인 129건에 그쳤다.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 정비에도 규제개혁 만족도는 여전히 70점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올 3월 내놓은 ‘2021 규제개혁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규제개혁 종합만족도는 72.65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2005년부터 매년 일반 국민,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규제개혁 만족도를 조사하는데, 만족도가 70점을 넘어선 것은 2018년이 처음이었다. 만족도는 2019년에는 67.9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규제개혁을 바라는 기업들도 여전히 ‘불만족’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 4월 대기업 250개와 중소기업 25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규제개혁 체감도는 95.9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해 기업들이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을 넘으면 ‘만족’이 더 크고 100 미만이면 ‘불만족’이 더 크다는 뜻이다. 규제개혁 체감도는 2018년 이후 한 번도 100을 넘은 적이 없다.
○ “규제개혁 방향부터 제대로 설정해야”
전문가들은 규제개혁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개혁은 사회적인 추진력을 확보하는 ‘정치’와 이해관계자 간의 이익을 면밀히 조정하는 ‘과학’이라는 두 축이 있다”며 “정치적 정당성과 비전을 제시해 추진력을 확보하는 건 결국 리더인 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의 비전은 총리와 장관이 전략적 시급성 등을 고려해 효과적으로 구성해 내는 게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지지 세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격의료 허용과 대형마트 출점 및 영업규제 완화 등 대표적인 규제개혁 좌절에는 이해관계 조정의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규제개혁은 결국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며 “사회적 분위기 등을 짚어 보면서 여론을 살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처별로 규제 전문조직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한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장은 “현재 정부부처의 업무 분장, 조직 구조를 보면 규제 노하우가 축적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불합리하고 중복인 규제는 없애고 필요한 규제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규제기관 자체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규제개혁을 위해 외곽 조직을 계속 만들어 압력을 주는 방식은 할 만큼 했다”며 “이제 부처, 규제기관으로 눈을 돌려 이들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전문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의 방향부터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정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신기술, 신산업에선 정부가 좋은 품질의 규제를 선제적으로 제시해 시장과 산업을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규제개혁 목표에 대한 고민 없이 개별 규제가 기존보다 나아졌다는 데만 만족하면 규제개혁 수요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규제개혁#전문조직#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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