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기’ ‘거리두기’… 무례한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들[지나영의 마음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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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최근 차를 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바꿨는데 더 편하고 안전한 것 같다. 선을 침범하지 않고 적절히 거리를 유지해주는 안전장치의 성능을 체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에도 자율주행 모드가 있다면 어떨까.’

살다 보면 무례한 표현을 반복하는 사람,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사람, 나아가 가학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특히 상대가 가족이라면?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맏며느리인 수연 씨는 명절 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시댁 일에 불려 다닌다. 그뿐 아니다. 수시로 집에 찾아와 막말을 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화병이 날 지경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건강한 관계는 적절한 선과 거리를 지킬 때 유지된다. 누군가가 반복해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 언행을 할 때는 명확한 ‘선 긋기’를 하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이를 줄여서 나는 ‘선거 요법’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화가 나면 이따금 내게 크게 언성을 높였다. 나는 내가 그 상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나를 존중하기 때문에 누군가 내게 소리 지르는 상황에 나를 두고 싶지 않으며, 그런 상황이 오면 그 자리를 떠나겠다고 했다. 나의 선 긋기가 꽤나 강력했는지, 그 뒤로 남편은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


선 긋기는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는 피하는 게 좋다. 또 상대방의 문제를 짚어내기보다 나의 고충에 초점을 둬야 효과적이다. 자신이 공격받았다고 느끼면 일단 부인하거나 방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연 씨의 경우라면 “지난번에 ‘너는 엄마가 돼서 애들한테 그런 걸 먹이냐’고 하신 것이 저에게 정말 상처가 되더라고요. 제가 많이 괴로웠어요. 그런 말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면 좋겠어요” 정도의 표현이 좋다.

이렇게 선을 그었는데도 존중하지 않는다면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일정 시간 만남을 갖지 않아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리에 나를 계속 두지 않는 결단의 선택인 것이다.

물론, ‘선거 요법’이 관계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렇지만, 서로 존중한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건강한 관계의 필수 안전장치이다. 처음에 좀 어렵더라도 선거 요법을 실행하다 보면 점점 더 건강한 관계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2020년 10월 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를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와 명상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8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14만 명이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나영 교수의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 선거요법’(https://youtu.be/oDjo72OtmD8)
#거리두기#인간관계#선거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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