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는 이재명 의원으로 굳어지고 있다. 80% 가까운 권리당원 누적 득표율을 보면 제왕적 총재였던 김대중의 득표율(1997년 총재선거 득표율 73.5%)과 견줄 만하다. ‘이재명당’에서 2년 뒤 총선 공천에 민감해진 의원들이 기민하게 움직인 것 아닌가 싶다.
직전 대선후보였던 이 의원에게 당 대표 자리는 최종 목표가 아닐 것이다. 2년 뒤 총선 결과가 1차 관문이겠지만 2027년 대선에 재도전하기 위한 중간 길목일 뿐이다. 이 의원의 대선 레이스를 내다보지 못하면 28일 출범할 이재명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 후 충분한 숙고의 시간도 없이 보궐선거 셀프공천과 전당대회 출마를 다그쳤다. 1997년 대선에서 석패했던 이회창이 8개월 만에 정치 일선에 복귀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다. 대선 레이스를 위해선 무엇보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사법 리스크 방어가 절박했을 것이다.
이재명당 완성의 핵심 동력은 강력한 팬덤이다. ‘무조건 이재명’을 외치는 강경 지지층은 이 의원을 지키기 위해 ‘기소 시 직무정지’ 당헌 개정을 밀어붙였고, 이 의원에 비판적인 ‘친문’ 인사들을 저격하는 홍위병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친명 세력은 이들을 당의 전면에 내세울 태세다.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이 의원 강경 지지파 입김이 센 권리당원의 전원투표를 우선하는 당헌 신설을 밀어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당원민주주의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친명 색채를 더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때 민주당 소속이었던 김진표 국회의장이 협치를 위한 ‘여야 중진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하자 친명파 의원들은 “당 대표가 확실한 이 의원 힘 빼기”라고 반발했다. 친명 세력과 결이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 아닌가.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친문 세력이 당내 주요 의사결정을 독식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친명 세력 중심의 일사불란한 체제는 대정부 투쟁에 최적화된 모델일 것이다. 윤석열 정권을 흔들수록 그 반사이익은 야당 몫이고,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 지지층의 목소리가 전체 국민을 오롯이 대변할 순 없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야당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집권을 위해선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정권을 되찾을 만한 수권 역량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강경 지지층을 뛰어넘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2012년 4·11총선 당시 ‘나꼼수’ 멤버 김용민이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을 때다.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고 한 발언이 알려지자 당시 한명숙 대표는 김용민의 사퇴를 권고했다. 하지만 친노 세력의 오너인 문재인이 사퇴를 반대하자, 김용민은 끝내 사퇴하지 않았다. 결과는 과반의석을 장담하던 민주당의 패배였다. 나꼼수 팬덤을 지켜야 한다는 문재인의 오판이 빚은 참사였다.
문재인 정권을 만든 양정철은 2018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권을 위해선 다 바꿔야 한다. 문재인이 공격받고 시달렸던 ‘친노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의원 측근들도 “이런 공식을 누가 모르나”라고 항변할 것이다. 앞으로 이재명당이 새로운 변화나 쇄신 카드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주인만 바뀐 ‘문재인 시즌2’로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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