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가의 말[이은화의 미술시간]〈229〉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5일 03시 00분


콘라트 펠릭스뮐러 ‘선동가 1번 오토 륄레’, 1920년.
콘라트 펠릭스뮐러 ‘선동가 1번 오토 륄레’, 1920년.
정장 차림의 남자가 청중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다. 왼손 검지는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쭉 뻗었고, 오른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커다란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됐고 귀도 붉게 달아올랐다. 도대체 남자는 누구고 무슨 말을 하기에 이리 격앙된 모습일까?

그림 속 남자는 독일의 혁명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오토 륄레다. 원래는 교사였지만 22세 때 사회민주당(SPD)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발을 담갔다.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표를 던지며 탈당해 1917년 독립사회민주당(USPD)을 세웠고, 이후 독일 공산당(KPD)을 창립했다. 그는 부패한 바이마르 공화국뿐 아니라 지배계급화되는 공산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혁명은 정당의 일이 아니다”라며 “레닌 조직은 부르주아 사회의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설파했다. 뛰어난 선동가이자 연설가였기에 1917년 드레스덴 좌파 급진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 그림은 륄레의 드레스덴 연설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드레스덴의 노동자 집안 출신인 콘라트 펠릭스뮐러는 18세에 이미 전문 화가로 활동했지만 점차 정치에 관심을 두다가 1919년 독일 공산당에 가입했다. 이때 륄레와 친한 친구가 되면서 이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다. 23세의 청년 화가는 46세의 노회한 정치인을 열정적인 선동가로 표현했다. 청중들은 감동에 찬 눈으로 연설을 듣고 있다. 훗날 화가는 “마음과 영혼을 담아 그 유명한 폭풍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회고했다.

청년기에는 피가 뜨겁기 마련이다. 펠릭스뮐러는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혁명가의 초상을 그렸다. 하지만 1933년 나치 정권은 그의 그림을 퇴폐미술로 낙인찍어 151점을 몰수하고 파괴했다. 이 그림도 그때 잃었다. 이후 화가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지만 1946년 이 그림의 복제화를 그렸다. 륄레가 사망한 지 3년 후였다. 화가는 젊은 시절 흠모했던 선동가의 뜨거운 가슴과 말을 중년의 나이에 되새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선동가#말#오토 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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