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들과 식사를 할 때의 일이다. 가전과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와 반도체 회사, 통신사에 다니는 젊은 직장인들이 모인 자리였다. 언뜻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지만, 일과 회사에 대한 고민은 복잡하기만 했다.
가전제품 부서에 몸담은 A가 말했다. “우리 사업부서는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 이제 가전제품이 안 팔리지 않나. 언제까지 냉장고를 팔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휴대전화 판촉 부서에 있는 B가 입을 열었다. “휴대전화 시장 사정도 별 다를 게 없다. 이미 사양사업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A와 B의 대화를 듣고 있던 통신사에 근무하는 C는 “그래도 가전이나 휴대전화는 수출이라도 하지 않나. 우린 내수가 전부라 ‘노답’”이라고 했다.
이들의 시선은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D의 입으로 모였다. D가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도 딱히 뭐….” 명실상부 현재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어두운 시장 전망 등에 대한 우려가 뒤섞인 말이었을 테다.
한국 경제의 근간이 돼 온 주요 제조업과 통신업에 종사하는 젊은 직원들의 이 같은 우려는 갈수록 미래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산업계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휴대전화와 반도체의 고속 성장을 일군 시니어급 직원들은 그간의 성장과 성과에서 오는 보람과 추억을 일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젊은 직원들에게 휴대전화와 반도체는 이미 성장이 정체되거나 레드오션으로 접어든 산업군으로 인식되는 듯 보인다.
이 같은 불안은 회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유망한(혹은 유망해 보이는) 산업군으로 이직을 반복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구직자와 직장인 10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스타트업 취업 의향 설문 결과 72.3%가 취업(이직)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낮은 실업률에도 구인난과 구직난 등 일자리 미스매치가 일어나며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고용 있는 침체’ 우려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기업이 현재 필요로 하는 인력과 공급 간의 수급 불균형, 대기업이 보장해주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안, 성장에 대한 구직자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산업 구조가 맞물려 일자리 시장과 경제 전체가 대혼돈에 빠져드는 것이다.
일자리 시장과 경제 성장의 새 물길을 터야 할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을 이겨내고 10년, 20년 뒤를 책임질 신사업을 발굴해 미래 세대에 청사진을 보여주는 기업이 앞으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업에 알아서 글로벌 시장도 석권하고 미래 먹거리도 찾으라기엔 이미 너무 많은 국가가 사활을 걸고 기업 지원 및 육성에 나서고 있다. 어두운 미래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두운 미래의 먹구름을 이미 젊은 세대는 올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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