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길을 나선 시인. 말에게 길을 맡긴 채 꾸벅꾸벅 졸며 간다. ‘몇 리를 가도록 닭 울음조차 들리지 않으니’ 인가 하나 없는 산길이며 들길을 꿈결처럼 헤매는지도 모른다. 날리는 낙엽에 화들짝 놀라 깬 시인의 눈에 든 것은 저 멀리 날고 있는 학 한 마리와 먼 산에 걸린 새벽달. 여기저기 서리가 엉겨 붙은 이 황량한 새벽길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시동(侍童)이 투덜투덜 불평을 쏟아낸 모양이다. 선잠을 깨 새벽같이 끌려 나온 것도 못마땅하고, 가도 가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적막한 나들이가 힘겹기도 했을 것이다. 한데 스스로를 외로운 학에 견줄 만큼 고독했을 시인이 왜 생뚱스레 ‘시절도 태평하고 길 또한 평탄하다’고 했을까. 시인의 이 위로 아닌 위로가 아이는 의아했을 것이다. 자신을 다독이려고 농담을 던진 것일까. 아니면 ‘시절도 태평하고 길 또한 평탄했으면’ 하는 기대를 혼잣말처럼 내뱉은 것일까.
시는 시인이 병약한 동생을 만나려 휴가를 얻어 장안에서 강남으로 가던 길에 지은 거라고 한다. 자신의 오랜 병구완에도 불구하고 안질로 실명하게 된 동생에 대한 연민.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고 사방은 그지없이 스산하지만 곧 삶의 탄탄대로를 맞으리라는 형의 간절한 소망을 되뇐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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