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짱깨’가 혐오 용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짱개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추천함으로써 복권됐다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인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투쟁의 언어는 자국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했다.
2022년 8월 24일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지 서른한 번째 되는 기념일이었다. 우리로 치면 기쁜 광복절인데 그놈의 러시아로부터 전면침략을 당한지도 딱 6개월 됐다.
“승산이 있느냐”는 질문에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길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는 대답한 인터뷰 기사는 가슴이 먹먹하다. 그들에게는 승리가 ‘언제’냐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생떼 같은 내 가족이 죽는데, 거의 한국 영토만큼 되는 우크라 땅 5분의 1을 잃었는데, 어떻게 이대로 끝낼 수 있겠나.
지금 푸틴을 멈춰 세우지 않으면 전쟁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란 대사의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번 전쟁은 중국-인도 간 국경 분쟁이나 시리아 내전 같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 권위주의 러시아제국이 과거 지배했던 약소국을 다시 차지하겠다며 패권야욕을 불태운 데서 비롯된, 제국주의 전쟁이어서다.
시진핑, 윤 대통령에 미국 몰아내라 제의
같은 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베이징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축하서신에서 “중한 양국이 좋은 동반자가 돼야 한다”면서도 “양측이 큰 흐름을 잡고 장애를 배제”할 것을 언급했다. 여기서 ‘장애’란 당연히 미국을 뜻한다. 대면만남을 고대한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만남’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 또 하나의 권위주의 제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몰아내라고 양국 관계의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이는 7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 한중 외교장관 회의에서 박진 외교장관이 밝힌 우리의 외교입장을 거부한 발언이다. 그때 박 장관은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의) 새 정부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중시한다. 자유와 평화, 인권과 법치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사회 협력과 공조에 적극 동참할 것이며 한중관계도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자유와 인권과 법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이를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중국, 6·25 남침 유감 표명” 밝히긴 했다
30년 전 한중수교를 맺은 1992년은 ‘탈냉전’의 시대였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의 상징이었던 낫과 망치가 그러진 붉은 깃발은 1991년 12월 26일 소련 해체선언과 함께 크렘린 상공에서 내려졌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는 것이 절실한 시기였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 성공으로 5000년 한중관계에서 중국보다 당당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기였다. 수교 때 6·25 전쟁 당시 중국이 우리에게 가한 고통에 대한 사과를 ‘문서’로 못 받은 점이 아쉽고 안타까울 정도다. 외무부가 보도 자료를 통해 “중국 측은 6·25 참전은 당시 중국의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며 이는 과거에 있었던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세(勢)의 변화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건 중국의 오랜 특징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중간의 세도 변한 탓일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놓고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불가)을 주장하더니 이젠 ‘1한’(배치된 사드 운용 제한)까지 들이대고 나섰다.
거짓도 기정사실화 하는 짱깨중심세상
3불이란 2017년 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오매불망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엿 바꿔먹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10월 중국과 그놈의 3불 협의를 했던 남관표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2020년 주일 대사관 국감에서 “합의도, 약속도 한 적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상관이었던 강경화 외교장관 역시 2020년 10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합의가 아니라 협의”임을 확인한 바 있다. 3불에 구애받을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대만의 대(對)중국협상 전문가 린원청이 쓴 ‘중국을 다룬다’에 따르면, 중국은 외교나 협상에서 윈-윈이나 정직을 중시하지 않는다. 국제적 규범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패권적, 자기중심적 중국식 세계관을 갖고 있어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상대국에 지키라고 강요한다. 기만적 전략을 중시하는 고대병법의 전통이 뿌리박힌 데다 ‘협상은 선전수단이고 보복의 도구일 뿐’이라고 보는 공산당 기질까지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이 외치는 사드 3불1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린원청도 “중국이 제기하는 대부분의 원칙들은 일종의 함정”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3불1한 역시 사실이 아닌 것도 기정사실화해버리는 공산당 특유의 전략일 수 있다. 중국이 매우 잘하는 일이 통일전선전술이다. 국익을 외면한 채 그쪽 편에서 섰던 친중 정치인들에게 나라 운명을 맡겼다는 것이 서글플 따름이다.
자유 아닌 기만이 지배하는 중국천하
1979년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선 이래 미국은 이 나라가 잘 살게 되면 민주화할 것으로, 우리는 북핵 폐기를 도울 것으로 믿어왔다. 착각이었다. 미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을 개방시켰다고 합리화했지만 실은 중국이 소련 견제를 위해 미국을 이용했다는 분석은 섬뜩하다.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소련을 제거한 다음, 공산정권 수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이 지배하는 ‘천하의 세계’를 노리고 있다는 게 미국 국방부 고문 마이클 필스버리의 주장이다.
이번 러시아전쟁도 중국은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다. 러시아가 길고 고통스러운 전쟁 비용을 치르게 해서 중국이 믿는 ‘서구의 쇠퇴’를 가속화해서는 시진핑은 평소 강조해 마지않는 ‘새로운 변혁기’를 맞을 작정이겠지만, 그렇게 해서 중국은 미국을 능가할 것 같은가. 한때 그런 예측이 숱하게 나온 것도 사실이다. 2028년께 중국의 명목GDP가 미국을 추월해 세계 선두에 오른다고 일본경제연구센터는 ‘2020년’ 예측했었다. 코로나19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했다면서, 애초 2036년 이후를 예상한 중국과 미국 간 GDP 역전이 7년 앞당겨질 것으로 관측했었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浮上) 아닌 ‘쇠퇴’가 언급된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미국 전 재무장관은 19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년이나 1년 전에는 중국 GDP가 미국 경제를 언젠가 확실히 추월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명확하지 않다.” 중국경제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많다. 금융 오버행(잠재적 과잉물량), 명확한 미래 성장 동력 부재, 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 생산인구 감소….
자유 없는 짱깨처럼 살 순 없지 않나
한마디로 하면,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라시아 대륙의 침략 제국 러시아처럼, 권위주의 제국 중국에도 개인의 자유는 없다. 개혁개방에 나섰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30년 전 결국 무너진 것도 소련에는 자유로운 금융도시 홍콩이 없기 때문이었다.
민주국가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그래서 교정의 매커니즘도 작동한다. 자유와 인권과 법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흔들려도 그래서 다시 지켜진다. “중국은 대국이요, 우리는 소국”이라던 문 정권의 굴종외교를 떨쳐내고 국제사회 보편적 가치의 편에 다시 선 것만으로도 윤석열 정부 출범은 만세 부를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자유를 강조한 정부가 집권당 내에선 내부총질마저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그러다 집권당 밖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막으려 한다면…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평화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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