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처음 내놓는 내년도 예산안이 639조 원으로 짜여졌다. 올해 본예산보다 5.2% 늘고, 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올해 정부 총지출에 비하면 6% 줄어드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총지출이 연평균 8.7%씩 증가한 것 등을 고려할 때 13년간 이어져온 확장재정 기조를 건전재정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정부는 자평했다.
올해 말 나랏빚이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0% 선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가파른 재정 확대에 브레이크를 거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지만 사상 최대인 올해 총지출은 대통령선거, 전국 지방선거 때 벌어진 포퓰리즘 경쟁 때문에 폭증한 것인 만큼 6% 줄이는 정도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할 수는 없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의 요구가 반영되고, 경기침체를 이유로 내년에 추경 요구가 제기되면 총지출 감소마저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정부, 여당이 먼저 대선 공약 등에 대한 지출을 최소화하거나 뒤로 미루고 서민, 취약계층을 위한 예산 편성에 집중하면서 국민과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윤 대통령의 선심성 공약 예산을 우선적으로 반영했다. 내년에 병사 월급을 100만 원으로 올리고, 만 0∼1세 자녀 양육가구에 월 35만∼70만 원의 부모급여를 주는 게 그런 경우다. 이런 식으로 국회에서 생산적인 예산 협의가 가능하겠는가.
글로벌 긴축으로 인한 경기 둔화를 고려할 때 내년에 세금이 제대로 걷힐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내년 국세가 올해보다 0.8% 늘어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표 수출산업인 반도체 경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고, 부동산·주식 거래도 줄고 있어 내년 세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정부는 내년부터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제도를 손봐 연간 13조 원의 세금을 깎아줄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물가와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정부도 긴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재정 건전화 의지가 분명하다면 120개 국정과제에 들어갈 예산부터 최대한 군살을 빼야 한다. 정치권 역시 무분별한 증액 요구를 자제하고 정부가 스스로 줄이지 못한 불필요한 지출을 걷어내야 한다. 특히 올해 국회는 엄격한 기준의 재정준칙을 반드시 법제화해 무너진 재정 규율을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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