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다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한국의료의 민낯을 보여줬다. 누구나 병원에 쉽게 갈 수 있는 의료 강국이지만 정작 위·중증환자는 수술을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만성적인 전공의(인턴·레지던트)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올해 필수의료과목 전공의 확보율을 보면 소아청소년과가 28.1%로 가장 낮았고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순이었다. 최근 끝난 전공의 모집에서는 이른바 서울 빅5 병원도 충원에 실패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수가 인상을 포함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젊은 의사들은 정부가 쉬운 처방만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26, 29일 4명의 전공의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필수의료 기피 해법을 들어봤다.》
―왜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목을 기피하는 것인가.
이혜주=수술 받은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할 때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흉부외과를 선택한 이유다. 그런데 레지던트 3년차에 그만두고 1년 정도 쉬고 있다. 각오하고 갔는데도 번아웃(소진)이 왔다. 2박3일 동안 응급상황이 반복돼 라면 한 끼 먹으면서 수술하는 교수님도 봤다. 전공의를 마쳐도 내 삶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없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문제다. 사명감만으로 버티기 힘들다. 여한솔=2019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추석연휴에 당직을 서다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송주한 세브란스병원 중증환자전담의가 과로로 쓰러졌고 최근 가족과 이별했다. 밤을 새우다 죽을 수 있다는 걸 보면 그 분야로는 안 가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의사는 다른 직업보다 도덕성과 사명감이 투철해야 한다. 알지만 모든 의사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강민구=보상체계가 기형적이다. 생명과 직결된 어려운 수술은 할수록 손해가 나고, 미용 같은 쉬운 진료는 보상이 크다. 전반적으로 의료수가가 낮으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할수록 이익이 난다. 누가 수술실을 지키려 하겠나.
이들은 수련 과정의 전반적인 개선 없이 수가 인상만으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의 수익 구조와 전공의를 싼 인력으로 보는 관행, MZ세대(밀레니엄+Z세대)의 가치관 등이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의 어떤 문제가 필수의료 공백을 불러오나. 강민구=수가 인상은 누구나 찬성한다. 보건의료계 전체가 혜택을 보니까. 이보다 앞서 젊은 의사들을 ‘갈아 넣는’ 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술기(術技·수술방법)를 익혀야 하는 전공의들이 교수진의 업무 보조로 바쁘다. 병원은 사실상 최저임금에 이들을 쓰고 있어 추가로 의사를 고용할 동기가 없다. 미국 캐나다 영국처럼 전공의들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 마구 부리지 못하게 하는 거다.
여한솔=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그런데 병원은 전공의를 교육생이 아니라 싼 의료 인력으로만 본다. 수술을 참관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업무에 시달린다. 진료과목이 지나치게 세분되는 것도 수련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다. 신경외과만 해도 뇌혈관·척추·종양 등으로 세분된다. 수련 과정 동안 이를 다 익힐 수 없다 보니 인턴·레지던트를 마치고 세부 분야를 정해 더 배운다. 서울아산병원만 해도 신경외과 의사가 25명인데 개두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뿐인 것이 비극의 발단이 됐다. ―MZ세대 의사의 등장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데….
강민구=인턴 경험하고 나면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전공의는 24시간 당직을 서고 다음 날 정상 근무한다.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거다. 정말 1분도 자지 못하는 날이 있다. 이번에 전공의협의회장 선거에서 36시간 연속 근무 개선이 가장 호응이 컸던 공약이다.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과목을 보면 수련을 마쳐도 당직을 계속해야 하는 과들이다. ‘워라밸’은 MZ세대에게 민감한 이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변화하는데 20, 30대 의사만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업의 본질에 헌신하는 의사가 있다. 이들이 못 버티고 포기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혜주=신경외과, 흉부외과 같은 바이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9시 출근, 6시 퇴근까지 바라지 않는다. 이런 바이털과는 수련을 마치면 오히려 근무시간이 늘어난다. 개인의 삶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데 우리 세대에서는 심각한 문제다.
여한솔=요즘 인턴들은 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시키거나, 맡은 일이 아니면 항의를 한다. 환자 돌보는 일이 시간과 업무가 무 자르듯 하기 어려워 우리끼리는 ‘그레이존’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그러니 시스템을 갖추고 야근수당도 챙겨주는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직장 구할 때 대기업 가고 중소기업 안 가는 것과 똑같다.
―정부 정책이 정답이 아니라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여한솔=서울아산병원 사건을 조사한 복지부는 의사들이 휴가와 출장 순번을 잘 조정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럼 의사가 아파서 비우면 어떻게 되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막고 의사 부담을 덜어야 한다. 맹장수술은 어느 병원이든 할 수 있는데 무조건 KTX 타고 대학병원으로 온다. 대학병원은 수가가 낮으니 환자수를 늘려 손해를 벌충하므로 환자를 모두 받는다. 응급실 근무하며 모기 물렸다고 오는 것도 봤다. 사회적 낭비다.
이지후=병원도, 환자도 전공의를 수련 받는 의사라는 인식이 없다. 정부가 수련 과정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병원이 전공의를 업무보조를 하는 인건비 싼 인력으로 대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환자 역시 의사의 서툼과 배움을 용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남자 의대생이 분만을 참관하면 항의를 한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혜주=지금 요양병원에 일한다. 흉부외과 근무할 적보다 근무 시간은 절반, 월급은 3배가 됐다. 형평성에 어긋난 보상체계는 바로잡아야 한다. 환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의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위급 상황에서 심폐소생술(CPR)을 했다가 소송당한 의사도 봤다. 살려놓은 환자가 후유증이 있다고 고소한 건데 그런 일을 당하면 소신껏 진료할 수가 없다.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무너지는 선배들을 보면서 소송에 휘말리기 쉬운 과목은 피하고 싶어지는 거다.
―의사 수를 늘리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여한솔=동네에 병원이 즐비하다. 총량이 문제가 아니라 배분이 왜곡돼 있다. 수도권 큰 병원에는 몰리고, 지방에는 가지 않는다.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으로 몰리고 내·외·산·소는 외면한다. 의사가 늘어나도 이런 구조는 그대로일 거다. 오히려 의사의 과잉 진료로 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강민구=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 증원해도 전문의 배출되는 데 10년 걸린다. 그동안은 이를 방치하겠다는 건지…. 신경외과 전문의 수를 보면 외국과 비교해 적지 않다. 모두 척추치료만 하는 게 문제다. 젊은 의사들의 용기 있는 선택을 돕는 유인 구조를 먼저 만들어 달라.
이들은 10년 뒤를 걱정했다. 앞으로 뇌출혈, 심장병 같은 응급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없고 어린이는 병원을 찾아 원정을 가야 할지 모른다. 정부가 정확한 진단 없는 쉬운 처방만 계속한다면 그 대가는 건강을 위협받는 국민이 치르게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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