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한국 최저임금(9620원)이 사상 처음 일본(961엔)을 추월한다. 지금처럼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을 밑돌면 한국 편의점에서 일하는 최저시급 청년이 일본에서 같은 조건으로 일하는 청년보다 더 벌게 된다. 일본 경제가 ‘거품 붕괴’ 이후 저성장 늪에 빠진 데다 달러 강세 속에서 원화 가치가 엔화보다 상대적으로 덜 하락하면서 생긴 일이다.
최저임금 역전은 경제적 요인 외에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지난 정부의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물이다. 2018∼2022년 5년간 한국의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은 41.6%로 물가 상승률(9.7%)의 4배가 넘는다. 같은 기간 일본의 인상률은 12.1%에 그쳤다. 한국이 얼마나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는지 알 수 있다. 최저임금 수준을 보여주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10년 45.1%에서 올해 62%로 상승했다. 영국(60.2%), 독일(57.0%), 일본(46.5%), 미국(27.3%)보다도 높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이제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비교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최저임금을 단기에 큰 폭으로 올리면 받는 사람에겐 좋지만, 기업 경영자나 소상공인들은 불어난 인건비를 감내해야 한다. 이 비용이 가격에 전가되면 인플레와 최저임금 추가 인상 압력이 커진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사람을 줄이거나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직원을 두지 않는 ‘나 홀로 자영업자’는 이미 지난달 434만 명으로 14년 만에 가장 많다.
최저임금은 소비자 구매력을 높이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 수단인데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저소득층엔 그림의 떡이다. 노동조합은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데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최저임금 미만율’은 2010년 11.5%에서 올해 15.3%로 상승했다. 농어업, 5인 미만 사업장,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 등에서 최저임금 미만율이 평균의 2∼3배에 이른다.
이런 데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모든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국 캐나다 일본은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다. 벨기에 스위스 멕시코 등은 업종별로 차등 적용한다. 룩셈부르크, 호주, 네덜란드에서는 일정 연령 이하나 수습생에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허용한다. 싱가포르 홍콩 등은 외국인 도우미에게 내국인과 다른 최저임금을 준다.
최저임금 한일 역전시대엔 최저임금 인상에 집중된 사회적 에너지를 최저임금 수용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최저임금 피벗(pivot)’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경제 여건에 맞춰 단계적으로 올리되 사문화된 최저임금법 4조의 취지를 살려 업종 등에 따라 우리 실정에 맞게 차등 적용해 수용성을 높이는 식의 ‘대타협’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의 지속 가능성도 중요한 과제다. 저임금의 근본 원인은 낮은 생산성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4.6% 상승하는 동안 1인당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은 13.3%, 서비스업은 3.1% 증가했다.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더 늘리고 청년들이 이런 일자리로 직행할 수 있게 교육의 질과 기회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일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런 준비 없이 최저임금 도입 34년 만에 맞이하는 한일 역전시대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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