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현]겹겹이 ‘방탄’ 무장으로 이재명을 지킬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31일 03시 00분


김지현 정치부 차장
김지현 정치부 차장
“그래도 ‘방탄’은 너무 나간 표현 아니냐.”

지난 대선 직후 칼럼에 “이재명이 너무 조급하게 정치권으로 돌아오면 ‘방탄 국회의원’ 신분으로 수사를 피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썼더니 이재명을 극도로 싫어하는 더불어민주당 인사마저 이렇게 지적했다. 당시만 해도 ‘이재명 방탄론’은 국민의힘에서 주로 쓰던 표현이라 “좀 과했나” 싶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 나의 정치적 상상력 부족을 반성한다. 그새 그는 ‘이 의원’에서 ‘이 대표’로 두 번 직책이 바뀌었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사실상 ‘셀프공천’으로 당선됐고, 가까운 의원들의 만류에도 전당대회까지 출마해 28일 민주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러는 동안 방탄 논란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의원 배지에 원내 1당 대표로도 부족했는지 ‘개딸’들은 “부정부패로 기소돼도 당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당헌 개정까지 청원했다. 이 대표 관련 사건들의 공소시효 종료가 임박했으니 미리 사전조치를 취해 놓으라는 노골적인 요구였다. 덕분에 이제 이 대표는 기소되더라도 자기가 의장을 맡는 당무위원회를 연 뒤 ‘친명’ 최고위원 등과 함께 스스로를 ‘정치 탄압’의 희생양이라고 판단만 하면 된다. 그나마 개딸 등 권리당원 투표를 당 최고 의사결정 방법으로 올려 달라는 ‘권리당원 전원투표제’가 최종 관문에서 부결된 게 민주당의 체면을 살렸다. 이 투표제로 말할 것 같으면 2020년 위성 비례정당 창당과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등 민주당이 대형 헛발질을 할 때마다 ‘만능 키’처럼 동원돼 온 제도다.

이 대표는 그동안 개딸들의 집단행동을 사실상 독려해 왔다. 당헌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검찰의 야당 탄압 측면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9일 CBS 라디오)더니 전당대회 직전인 24일엔 개딸들과 직접 만나 “극렬 팬덤 뭐 어쩌고 그러는데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런 수준 낮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새로 꾸려진 친명 지도부도 출범하자마자 개딸들 못지않게 ‘이재명 지키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첫 공식 최고위원회의부터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의 법카 유용 의혹에 맞서 “그럼 김건희도 특검하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으니 앞으로 볼만할 것 같다. 수석으로 당선된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장에서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내부 총질 중지, 총구는 밖으로, 이재명 당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라’는 메시지”라며 비명계에 대한 공개 경고까지 했다.

이 대표는 그토록 억울하다지만 벌써 1년 가까이 그를 향해 ‘사법 리스크’와 ‘방탄용’이란 비판이 이어지는 건 그만큼 그의 해명이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를 지켜줄 수 있는 건 겹겹이 방탄도, 꼼수로 개정한 당헌도 아니다. 그부터 진실 앞에 초연해질 때 진정으로 그를 믿어주는 동료 의원, 그리고 민심이 그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이제 제1야당 수장이 된 이 대표에게 논어 속 공자 말씀 한 구절을 전한다.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저절로 따르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이재명#방탄#이재명 방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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