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생산과 소비, 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트리플 마이너스’ 현상이 나타났다고 통계청이 어제 밝혔다.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세 지표가 4월에 이어 3개월 만에 또다시 동반 하락한 것이다.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과 불경기로 기업과 가계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광공업 생산은 전월보다 1.3% 감소했다. 한국 산업의 주력품목인 플래시메모리와 D램 등 메모리 반도체와 관련 장비 생산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으로 반도체 재고가 쌓이면서 제조업 재고율은 2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상반기에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사상 처음 50조 원을 넘었고 SK하이닉스와 LG전자 등 주력 기업들에도 재고가 쌓이고 있다. 7월 설비투자는 3%대 감소세를 보였다. 악성 재고에다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신규 투자에 나설 여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 재고가 늘어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가계는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소매판매는 3월부터 다섯 달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이미 가계소비는 2분기에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처분소득 100만 원 중 66만4000원만 쓸 정도였다. 비싼 가격표에 놀라 돈을 쓰지 않으려 하는 ‘스티커 쇼크’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이 5, 6%대를 유지하는 한 소비 침체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리스크와 고물가 상황이 주요 경제지표의 동반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어제 기획재정부는 “경기 회복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기업과 가계가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에 떠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말로는 반도체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이달 초 발의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법안에 대한 심사는 미루고 있다. 국회 공전이 길어지면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생활물가 지원과 공급망 위기 대응 같은 민생·기업 대책이 대거 표류하게 된다. 정치권과 정부가 지금 울리는 위기의 경고음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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