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기자본에 당한 官治’ 론스타 사태… 성찰 없인 또 당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일 00시 00분


지난 2005년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내 입주해 있던 론스타의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 2005년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내 입주해 있던 론스타의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0년을 끌어온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한국 정부가 2900억 원을 론스타에 지급해야 한다는 판정이 나왔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중재 신청 후 발생한 이자로 185억 원도 배상하도록 해 정부가 지불할 금액은 약 3100억 원에 이른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한 나라의 정책, 법령으로 피해를 봤을 때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론스타 소송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첫 사례다.

론스타와 한국의 악연은 외환위기 후 부실해진 외환은행을 2003년 매각하며 시작됐다. 해외 투기자본에 은행을 헐값에 넘긴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금융시장 개방, 외국자본 유치가 급하다는 금융당국의 주장이 관철됐다. 문제는 론스타는 높은 수익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매각차익, 배당금으로 4조7000억 원 이득을 챙겨 ‘먹튀’ 논란까지 일었지만 2012년에 ICSID 중재를 신청했다. 당국의 승인을 미뤄 영국계 HSBC에 은행을 비싸게 팔 기회를 놓쳤고, 이후 하나금융지주에 싸게 팔아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이번에 ICSID는 여러 쟁점 중 외환은행을 2012년 하나금융에 매각할 때 정부 승인이 늦어져 가격이 더 떨어진 점만 일부 인정하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배상 규모도 약 6조3000억 원의 청구액 중 4.6%만 인정했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론스타 사태는 한국 금융산업이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던 시절 투기자본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 금융당국이 독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벌어진 일이다. 문제가 생긴 뒤에도 매끄럽지 않은 정부의 일처리, 전문성 부족이 이어져 막대한 세금이 나가게 됐다. 한국적 관치(官治)금융의 총체적 실패인 셈이다.

그사이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론스타와 관련해 중요 결정을 내린 이들 중 일부가 정부 핵심 포스트에 남아 있다. 다른 ISDS 소송도 여러 건 진행 중이어서 대응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사태의 전말을 객관적으로 담은 백서(白書)를 만드는 등 철저한 반성을 통해 다시는 혈세가 축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투기자본#론스타사태#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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