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소멸 방지 대책을 가동했다. ‘무인(無人)촌’으로 전락할 위기의 지역에 10년간 10조 원을 투자하는 프로젝트다. 고향을 등지는 청년을 붙잡기 위해 시군구가 내놓은 계획들을 보면 의문이 든다. 이렇게 한다고 대도시로 빠져나간 젊은이가 돌아올까. 설사 성공하더라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아닌가.
감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도 소멸위기다. 25년 후엔 서울 강북과 도봉구가 소멸 고위험, 종로 서초 송파 등 23개구는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한다. 95년 후가 되면 전체 인구는 일제강점기보다 적은 1510만 명으로 쪼그라드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요약되는 인구위기는 시차가 나고 정도가 다를 뿐 모든 선진국들이 겪는 문제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영아 생존율이 높아지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 합계출산율이 2명 이하로 뚝 떨어진다. 해법은 두 가지, 출산을 장려해 고령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국의 인구학자 폴 몰런드는 서구 선진국의 인구 변동을 색깔로 표현한다. 젊은 이민자 유입으로 고령화가 완화돼 ‘회색’은 옅어지고, 백인 인구 감소로 ‘흰색’은 ‘유색’으로 대체된다. 대표적 이민국가인 미국의 백인 인구 비중은 지난해 60% 아래로 떨어졌다. 영국의 백인 비중도 2050년이면 60%대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런던 시장은 파키스탄계 이민자 출신이고, 보수당 총리 후보 8명 중 4명이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이민자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 비중은 10%에 육박한다. 호주도 출산율이 급락하자 ‘백호주의’를 버렸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회색화’가 진행 중인데 이는 보수적인 이민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대로 가면 12년 후엔 일할 사람보다 일자리가 많아진다. 제조업과 농업, 간병 분야는 이미 외국인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는다. 부족한 일손을 정년 연장으로 해결하자고? 일하는 노인 비중(34%)은 이미 선진국의 2배가 넘는다.
더 이상 저출산 대책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인구 대비 4%도 안 되는 체류 외국인 수를 늘리되, 취업 외국인의 11%에 불과한 전문인력 비중을 키우는 쪽으로 이민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숙련된 이민자가 국내총생산 증가에 기여하는 정도가 비숙련 인력의 2배라는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면서 젊은(Young) 고학력(Educated) 숙련 근로자(Skilled)인 ‘YES족(族)’ 유치에 적극 나서자고 제안한다. 고급 두뇌 쟁탈전은 이미 뜨겁다. 반도체 인력의 절반을 인도 중국 멕시코 중미에 의존하는 미국은 반도체 육성법 통과 후 해외 인재 추가 영입을 위해 이민법을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중국도 ‘반도체 굴기’를 위한 부족 인력 20만 명을 찾아 한국과 대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은 매년 대졸 반도체 인력만 6000명이 모자란다. 이를 꼭 국내에서만 조달해야 할까.
노인이 많은 사회는 범죄율이 낮아 평화롭고, 젊은 인구가 늘면 폭력과 범죄가 늘어난다고 한다. 젊은 이민자가 몰려오면 문화의 차이로 갈등 지수가 더 높아질 것이다. ‘국가소멸’이라는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평화롭게 소멸할 것인가, 갈등 요소를 관리해가며 활력 있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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