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후세인 세드키’ 모스크를 찾았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을 하루 앞둔 목요일이라 모스크 주변은 조용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오가는 몇몇 신자 또한 이방인 기자를 경계하는 기색 없이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이 모스크는 겉으로만 보면 다른 모스크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 7월 3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살된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유년 시절 신앙생활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1951년 카이로 인근 기자에서 태어난 알자와히리는 외과의사로 활동하다가 알카에다의 초대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만났다. 9·11테러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2011년 빈라덴이 미군에 암살된 후 11년간 알카에다를 이끌었다. 24년간 미국의 추적을 피한 알자와히리는 이달 초 카불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 모스크는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고 외국인 거주 비중이 높은 마디에 있다. 카이로에서 교회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힐 정도로 인종 종교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알자와히리의 가족은 이 모스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근처 아파트에 아직 거주하고 있다. 해당 아파트가 있는 골목에서 은행원 아흐메드 아샬리 씨(29)를 만났다. 그는 “마디처럼 다양성이 존중받는 곳에서 알자와히리 같은 극단주의 테러범이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테러범이 된 책벌레 소년
알자와히리는 성직자와 의사를 여럿 배출한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책벌레로 유명했고 타인과의 접촉이 불가피한 스포츠를 싫어할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을 즐겼다. 학창 시절 그와 동급생이었던 유명 언론인 자키 무함마드는 외신 인터뷰에서 “명석한 두뇌로 선생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지만 가끔 교실에서 혼자 망상에 젖은 모습을 보이곤 했다”고 회고했다.
알자와히리가 극단주의에 빠진 계기로 존경하던 극단적인 반외세,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조하는 사상가 사이드 쿠틉이 1966년 초대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에 의해 정부 전복 혐의로 사형을 당한 사건이 꼽힌다. 이때부터 알자와히리는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등 군부 독재자를 향한 극단적인 증오를 표출하며 정부 전복을 목표로 한 무장단체 ‘알지하드’를 조직했다. 사다트 전 대통령 암살 혐의를 받고 1981∼1984년 감옥에 갇혔고 출소 후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 방랑 생활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재벌 후손인 빈라덴을 만났다.
1998년 알카에다를 조직한 둘은 2001년 9·11테러를 자행하며 미 정보당국의 제거 목표가 됐다. 빈라덴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은거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1년 빈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에 제거되자 알카에다 2대 수장에 올랐다. 종종 사망설이 돌았지만 그때마다 연설 영상 등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며 이슬람 성전(聖戰·지하드)을 주창했다.
2010년대 초중반 당초 알카에다의 하부 세력이었던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자칭 국가를 수립하며 맹위를 떨쳤다. 과거만 한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알카에다의 와해 가능성 또한 자연스레 거론됐다. 알자와히리는 탈레반과의 협력을 통해 와해 위기를 줄이고 빈라덴이 없는 알카에다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밀착하는 알카에다-탈레반
이런 알자와히리의 사망 후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밀착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장을 연달아 잃고 조직 및 네트워크 재건이 시급한 알카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IS의 하부 조직인 ‘IS-K’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탈레반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핵심 인원이 400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 알카에다는 지난해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을 때부터 탈레반과의 적극적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 익명의 알카에다 대변인은 올 4월 미 CNN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이 알카에다 전우들을 보호해준 덕에 세계 여러 곳에서 성전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다”며 탈레반과의 친근감을 드러냈다.
미군 철수 후 집권 세력이 된 탈레반 또한 IS-K의 테러 가능성을 잔뜩 경계하며 알카에다를 끌어들여 IS를 견제하려 한다. 미군 철수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8월 26일 탈레반이 경비를 맡은 카불 국제공항에서 IS-K가 자폭 테러를 저질렀다. 미군 13명을 포함해 180여 명이 숨지고 130여 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였다. 이후 탈레반은 IS-K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보이고 있다.
IS-K와 탈레반은 이슬람 교리, 아프가니스탄 주도권 등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IS-K는 전 세계를 이슬람 신정 국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카불 공항 자폭 테러에서 볼 수 있듯, IS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중 가장 과격하고 잔혹한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알자와히리가 숨진 카불의 주택은 탈레반 산하 강경파 무장조직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 시라주딘 하카니의 보좌관 집이었다. 이 때문에 서방은 탈레반이 지난해 2월 미국과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체결한 ‘도하 협정’을 위반하고 알카에다에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탈레반은 도하 협정에서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알자와히리 사망 후에도 “도하 협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달 4일 “알자와히리의 아프가니스탄 도착 및 체류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했다. 같은 달 25일에는 “미군 공습이 발생한 주택에서 알자와히리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밀착, 아프가니스탄 정정 불안 등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 주요국을 노린 테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달 4일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의 미국 본토 공격을 걱정하고 있느냐’는 의원 질의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알카에다와 IS-K가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환경 악화를 틈타 재건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테러범들이 이들의 활동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국무부는 “테러 조직들이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테러 공격을 계속 계획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굳건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9·11테러 같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공격이 다시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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