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밥상의 ‘숨은 지휘자’[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3〉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일 03시 00분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우리네 식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물고기는 뭘까요?’ 해양문화를 주제로 강연할 때 즐겨하는 질문이다. 빈번히 호명되는 물고기는 고등어, 갈치, 조기, 명태, 가자미 등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나는 멸치라고 말한다. 밥상의 화려한 주인공은 아니지만, 맛을 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치 맛을 좌우하는 젓갈은 물론 액젓, 분말, 육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감칠맛을 낸다. 별미로 꼽히는 멸치회, 멸치찌개, 멸치구이를 맛보기 위해 봄철 부산 대변항 등지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멸치는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음식 재료로 활용됐다. 국이나 젓갈 또는 말려서 포를 만들거나 각종 양념으로 쓴다. 낚시 미끼로 사용하며, 선물용으로는 천한 물고기라고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기록돼 있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와 ‘임원경제지’에는 말려서 육지로 판매하는데 나라에 넘쳐나서 시골에서도 먹는다고 했고,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말린 멸치는 일상의 반찬으로 삼는다고 했다. 멸치가 백성의 밥상에 자주 올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너무 많이 잡거나 날이 궂어서 즉시 말리지 못하면 거름으로 사용했다.

멸치는 한반도 바다 어디서나 잡혔다. 연원이 깊은 멸치잡이 어법으로 죽방렴, 돌살, 후릿그물, 챗배잡이 등이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센 남해군 지족해협과 사천시 삼천포해협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9년)에 죽방렴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연원이 오래된 조업 방식이다. 경남, 전남, 충청, 제주에서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조간대에 돌담을 쌓아 잡기도 했다. 밀물에 해안가로 들어온 멸치 떼가 썰물 때 장벽에 갇히면 퍼 담는데 이를 독살 혹은 원담이라 한다. 동해에서는 백사장에서 후릿그물을 이용해서 잡았다. 그물 한쪽 줄은 육지에 있는 사람들이 붙잡고, 다른 한쪽 줄은 배에 탄 사람들이 육지로 이동하면서 어군을 에워싸며 어획하는 방식이다. 멸치는 불빛에 모이는 주광성 어류이므로 거문도, 가거도, 제주도 등지에서는 횃불을 밝혀 챗배로 어획했다. 거문도 뱃노래(전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가거도 멸치잡이노래(전남도 무형문화재 제22호), 멸치 후리는 노래(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0호)는 전통적인 멸치잡이 어업을 증명하고 있다.

예전부터 멸치는 말리거나 젓갈을 담갔다. 서울·경기 지역은 새우젓을 먹었고, 영호남 지역은 멸치젓갈을 먹었다. 부산 다대포 후리소리(부산시 무형문화재 제7호)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여보시오 어부님네/삼치, 꽁치, 갈치를 두고/멸치 잡아 무엇하리/여보시오 그 말 마소/열두 독 젓을 담아/황금빛에 맛 들면/첫째 독은 헐어다가/나라에다 상납하고/둘째 독은 헐어다가/부모님 전에 봉양하고/셋째 독은 헐어다가/이웃 간에 노놔먹지/남은 독은 팔아다가/논밭전지를 많이 사서/부귀영화를 누려보세(후략)” 후릿그물로 잡은 멸치를 젓갈로 만들면 삼치, 꽁치, 갈치 못지않다고 민요의 화자는 말한다.

일제강점기까지 명태, 조기, 멸치는 3대 어종이었다. 명태는 자취를 감췄고, 조기는 서해로 북상하지 않고 추자도 인근 남쪽 바다에 머문다. 멸치만이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멸치는 한국인 밥상의 숨은 지휘자다.

#한국인#밥상#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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