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중 녹음 기능이 없는 아이폰을 쓰는 기자에겐 낯설지만, 스마트폰으로 통화나 대화를 녹음하는 게 일상이 된 것 같다. 업무상 상대방과의 대화를 복기하기 위해서도 많이 사용한다. 요즘엔 일일이 녹음 내용을 다시 받아쓰지 않아도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텍스트로 바꿔주니 더없이 편리하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 일이 생겼다. 대화나 통화의 당사자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면 처벌받을 수 있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기 때문이다. 최대 형량이 무려 징역 10년이다. 지금껏 아무 문제 없이 해오던 일이 갑자기 엄청난 중범죄가 된다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달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대화 참여자 전원 동의 없이는 당사자 간 녹음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가 녹음할 경우만 불법이다. 윤 의원은 “사생활의 자유, 통신 비밀의 자유를 보장하고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 침해를 막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내밀한 대화가 유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회적 불신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분의 2가 법안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통화 녹음이 직장 내 괴롭힘, 갑질, 폭언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도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증거를 인멸하려는 가해자에 맞서 피해자가 증거를 남길 수단이 사라지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익적 필요 등에 대한 예외조항 없이 무조건 불법 도청에 준해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강자 비호법’ ‘아이폰 지원법’ ‘(통화 중 녹음 기능이 있는) 갤럭시 견제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국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낮지만, 음성권에 대한 논의는 이어갈 필요가 있다. 녹음과 녹화가 일상화된 사회이긴 하지만 상대방의 동의 없이 비밀리에 녹음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음성권을 어떻게 정의할지, 어느 수준까지 보호할지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데이터 수집이 광범위해지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개인정보나 사생활 보호를 둘러싼 갈등은 점점 확대될 것이다. 조지프 터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쓴 ‘보이스 캐처(The Voice Catchers)’라는 책을 보면 음성인식 기술은 목소리 톤으로 감정이나 성격을 추론하고, 나아가 그 사람이 앓는 질병부터 나이, 인종, 교육 및 소득까지 예측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밀녹음은 단지 대화 내용이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넘어 생체정보 유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멘트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음성권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사생활 보호와 사회적 편익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갈지 심도 있게 논의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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