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기 전에 한번 봐야지 생각했던 사람을 거리에서 마주쳤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고, 마지막 만남도 꽤 오래전이었기에, 단번에 그 사람을 알아보았을 땐 나조차도 놀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어도 특유의 눈빛과 분위기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사람이다. 봐야지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와있었다. 너무 거짓말 같아서 사람을 마주 본다는 실감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어떤 의도도 계획도 없이, 얼마나 촘촘하고 복잡한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야 우리는 만난 걸까.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어쩜 이렇게 만난담. 반가워라. 하고픈 말들 잔뜩 있었는데 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각자의 걸음을 걷다가 마주친 우연한 만남은 마치 눈 맞춤 같아서 찰나여도 뭉클했다. 행인들 오가는 거리에 우리만 멈춰 서서 짧은 안부를 나눴다. 반기는 얼굴이 활짝 웃는다. 짝짝 마주치는 손바닥이 즐겁다. 끄덕끄덕 고갯짓이 흐뭇하다. 어떤 그리움은 눈길로 손길로 몸짓으로 전해지는구나. 우연은 기쁜 대신에 짧았다. 서로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돌아서야 했다. 언제 다시 만날까 기약할 수 없었다.
“뭐라도 주고픈데요.” 아쉬운 마음에 가방을 뒤적거렸지만 특별한 게 없었다. 그때 수첩 틈에 삐져나온 냅킨이 보였다. 카페에서 작업할 때 냅킨에 무언가를 끼적이기를 좋아하는데, 마침 그날 옮겨 쓴 문장이 마음에 남아 수첩에 끼워두었다. ‘방랑기’라는 책에서 읽은 문장이었다. ‘내일 아주 행복할 겁니다. 그것으로 나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 합니다.’
“이거라도 주고 싶어요. 제 마음에 머물렀던 문장이에요.” 냅킨 선물은 이상하지만, 문장 선물은 특별하니까. 다행히 냅킨을 받아 든 이는 홍소를 터뜨리며 좋아했다. 오늘 하루 이 문장을 주머니에 잘 가지고 다니라고. 어디서 무얼 하든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말해주었다.
손을 흔들며. 만났던 사람과 헤어져 걸었다. 만난다는 건 뭉클하게 좋은 일이야. 주머니에 작고 달콤한 걸 채워 다녀야 할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보고 싶었던 사람에게,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에게. 스치는 찰나지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 같은 걸 평소에도 채워 두어야지.
이 만남이 좋아서 ‘만나다’라는 말뜻을 찾아보았다. ‘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보다.’ 아, 좋다. 기쁘게 움직이는 말이었다. 내가 가거나 네가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본다면, 우연이어도 찰나여도 우리는 기쁠 텐데. 동그라미 하나둘, 그리운 얼굴들 떠올리다가 사탕 한 줌 주머니에 몰래 숨겨둔 사람처럼 흐뭇해져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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