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감사의 마음도 인심도 모두 넘쳐나는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 추석은 길고 긴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거리 두기 없이 맞이하는 첫 명절이다. 하지만 요즘 전통시장에선 추석 대목 특유의 시끌벅적한 활기를 느끼기 어렵다. 고물가 경기침체 수해의 3중고에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웃을 여유를 잃었다. 사나운 태풍까지 물폭탄을 몰고 올라온다는 예보에 상인들은 “마지막 희망까지 태풍이 쓸어가는 것이냐”며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동아일보 취재팀이 둘러본 서울의 전통시장은 지난달 호우 피해의 흔적도 채 씻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는 물가에 놀라 일찌감치 추석 대목용으로 사들여 놓은 농산물과 건어물이 통째 물에 잠겼다. 그래도 연중 최고 대목을 놓칠 수 없어 빚을 내 새로 냉장고를 사들이고 추석 장사를 준비한다. 코로나 불황 끝에 덮친 폭우에 더는 버텨낼 도리가 없어 폐업을 준비 중인 가게도 보였다. 태풍 ‘힌남노’까지 올라오면 줄어든 발길마저 끊길까 몇몇 정육점은 소고기를 반값 떨이 가격에 내놓았다.
제수용품을 사러 나온 이들의 장바구니는 대개 비어 있다. 배추 한 포기에 1만 원, 사과 10개들이 한 상자에 4만 원을 달라고 한다. 추석 차례상 비용이 평균 31만8045원으로 지난해보다 6.8% 올랐다. 송편 명태 과일을 차례로 뺐더니 한 상 차려지지가 않는다. 친척들이 많이 올까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다. 인심 후하기로 소문난 가게를 찾아도 주인은 눈길조차 받아주지 못한다. 스스로 써 걸어둔 야박한 안내 문구 탓이다. “제발 많이 달라 하지 마세요. 너무너무 힘듭니다.”
기록적 폭우가 내리자 구청장과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찾아와 피해 상황을 묻고 갔다. 정부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추석 전 피해 보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추석이 오도록 최대 400만 원을 준다던 재난지원금은 소식이 없다. 말은 빠르고 행동은 굼뜬 행정력은 초유의 경기침체와 고물가 사태가 민생을 초토화시킨 비상 상황에서도 달라지는 법이 없다. 살 것 없어도 한 바퀴 돌고 나면 살아갈 힘을 얻곤 하던 씩씩한 전통시장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바로 그 계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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