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일본도 북미산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최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에게 “유럽 전기차 기업에 대한 차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여러 경로로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미를 통해 미국 측과의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주요 동맹의 반발에도 미국이 당장 인플레감축법을 손댈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인플레법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구호로 내건 ‘더 나은 재건(BBB)’의 역점 입법이자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도를 끌어올린 쾌거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측 반응을 봐도 조만간 법의 수정은 어려워 보인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주 한미일 안보실장 회동에서 “우리 모두 돌아가서 인플레법을 숙독해 보자”고 말했다.
중국 견제를 내건 미국의 경쟁력 강화 입법은 갈수록 보호주의 색채를 짙게 띠어가고 있다. 비단 인플레법뿐만이 아니다. 앞서 통과된 반도체육성법은 중국에 대한 투자 금지를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미국 우선주의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우방과의 연대를 강조했지만 정작 동맹의 이익마저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중국에 맞선 새 공급망 구축을 내세워 자국 기업의 본국 회귀와 동맹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유도해온 미국이다. 그런데 국내산과 외국산의 차별을 금지한 국제규범의 위반은 물론 동맹까지 외면한 입법으로 ‘동맹의 등에 칼을 꽂은 격’이라는 조롱을 자초했다.
한국은 그간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보조를 맞추며 미국과의 경제안보 동맹 강화에 주력해 왔다. 그런 핵심 동맹의 기업이 미국에서 불이익을 받고, 나아가 중국에선 손발을 잘라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면 미국이 추진하는 공급망 연대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동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성실하게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