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1세기에도 10년 넘게 장기 집권하고 있는 지도자들이다. 공통적으로 이런 장기 집권이 가능한 이유로 공산주의가 기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인물적인 특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관련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불과 60년 남짓 흘렀을 뿐이다. 호르몬이 권력 중독 현상에 미치는 영향도 속속 밝혀졌다. 지나친 권력 집착의 한 원인이 호르몬의 과다 분비 때문이란 것이다.
일명 ‘권력 중독 호르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남성 호르몬이라 불리는 테스토스테론이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늘면 목소리가 굵어지고 근육량이 증가하고 정신적으로는 권력 보유 및 강화 의지가 강해진다. 몸과 마음 모두 남성성이 강해지는데, 심할 경우 ‘마초(macho) 성향’을 띠게 된다. 권력과 테스토스테론은 서로 상호 작용한다.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의 이언 로버트슨 교수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많아져 권력을 잡으면 이후 다시 그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현상을 보인다. 권력과 테스토스테론은 서로를 북돋는 관계인 셈이다.
테스토스테론의 과다 분비 현상은 지도자들의 마초적 모습에서도 증명된다. 푸틴 대통령이 호랑이를 마취 총으로 제압하거나 웃통을 벗은 채 말을 타는 모습 등을 공개하는 것이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또한 여러 차례 백마 타는 모습을 선보이며 강한 이미지를 강조한 바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지도자들의 여성 편력에도 영향을 끼친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면 성욕을 증가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최고 지도자들이 정식 배우자뿐만 아니라 다른 성적 파트너를 찾는 것도 호르몬 영향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혼 상태지만 푸틴 대통령은 1명의 부인과 3명의 정부를 두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두 딸 외에 다른 두 여성이 낳은 자녀 네 명을 더 두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 김정일 시대의 ‘기쁨조’ 등은 여성 편력의 대표적인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최고 권력은 막강하지만 언제든 도전받을 수 있다. 이렇기에 지도자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반대파와 도전자들에 대한 견제, 더 나아가 숙청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기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더욱 강한 공격성을 띤다는 포르투갈 카폴리카 리스본대의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높은 자리일수록 권력 집착이 커지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은 장기 집권에 방해가 되는 인사들을 제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0년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로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던 중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독일 베를린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서 목숨을 건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3년 고모부 장성택,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이복형 김정남을 사망으로 이끈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지도자들의 과도한 공격적 성향에도 호르몬이 영향을 끼친다. 버지니아대 연구팀에 따르면 원숭이에 대한 실험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세로토닌, 코르티솔 등의 수치가 동물의 공격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세로토닌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으로 우울과 충동성을 완화하고, 반대로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된다. 원숭이 실험 결과 세로토닌이 낮고 테스토스테론은 높은 원숭이들이 가장 공격적이었다. 이들은 부상 위험에도 자기보다 큰 원숭이를 공격했으며, 성공한 경우 권력의 최상층에 진입할 확률도 가장 높았다. 호르몬을 통한 공격성, 그로 인한 권력욕의 연결 고리가 일견 증명된 셈이다.
이렇게 ‘포식자’ 같은 권력자들은 그럼 행복할까. 김정은 위원장이 폭음과 폭식에 빠지고,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 주석이 끊임없이 반대파 견제에 나서는 것을 보면 이른바 ‘통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장기 집권자들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것에도 역시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다. 바로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 효과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대커 켈트너 교수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권력자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더욱 권력에 도전하는 반면에 낮은 권력자는 실패를 과도하게 두려워하며 권력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전두엽의 도파민 상승과 관련이 높다. 즉, 권력이라는 달콤함을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해 더 큰 권력을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역으로 이런 권력을 잃었을 때 통제할 수 없는 상실감과 갈망을 느끼곤 한다. 최고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일수록 스스로 이를 포기할 가능성이 생물학적으로 극히 낮다는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영향이 큰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딜레마처럼 아직 각종 연구는 이런 인과관계를 알아내지 못했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의지는 복잡다단한데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가 다를 뿐 누구나 권력욕을 갖고 있으며 권력욕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 과할 때 문제가 생긴다. 적절한 권력욕은 더 큰 성취를 이끌어내는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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