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상훈]‘고립 육아’의 비극, 한국은 안전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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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곳 없이 벼랑 끝 몰리는 엄마들
‘육아 우울증’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요즘 일본 언론에서는 한 엽기적 사건 재판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2020년 5세 아들을 굶겨 죽인 혐의로 지난해 3월 체포된 이카리 리에(40)와 그를 세뇌시켜 결국은 아이를 굶기게 만든 혐의로 구속된 아카호리 에미코(49) 재판이다.

사건은 2016년 시작됐다. 두 사람은 어린이집에서 학부모로 만나 ‘마마토모’가 됐다. 우리말로 ‘엄마 친구’라는 뜻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 어울리는 엄마들을 일컫는다.

평범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아카호리가 “주변 엄마들이 당신을 욕한다” “다른 사람 말은 믿으면 안 된다” 등의 말을 이카리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마마토모에 못 끼고 ‘왕따’가 될까 두려웠던 이카리는 아카호리를 따르다 끝내 정신적 지배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당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며 이카리에게 이혼을 강요한 아카호리는 “(이혼) 소송에서 이기려면 아껴야 한다”고 돈을 뜯어내며 세 끼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게 강요했다. 결국 5세 아이는 영양실조로 숨졌다. 이카리는 올 6월 1심에서 유기치사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아카호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일본의 극단적 고립 육아(주변 도움을 못 받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 독박 육아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사히신문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마마토모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고립 육아의 늪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마마토모가 악의를 갖고 접근하면 세뇌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전했다.

메이지유신 이전 거주의 자유가 없던 일본 농경사회에서는 마을 구성원들에게 따돌림당하는 무라하치부(村八分)가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다고 한다. 장례와 화재를 뺀 모든 마을 생활과 행사에서 따돌림받는 것이다. 일본인이 웬만해선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집단 논리에 순응하며 왕따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무라하치부 풍습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육아 왕따’ 이상의 재앙이 없다. 친정 도움은 갈수록 받기 어려워지고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육아와 가사에 소극적이다. 과거 비슷한 나이에 결혼하던 시대에는 또래끼리 ‘품앗이 육아’도 했다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낯선 사람과 얼굴을 맞대기 꺼리는 요즘은 더 심각하다. 다른 엄마들 사이에 끼지 못하면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나을까. 더하다면 더한 것이 현실이다. 독박 육아 우울증이 낳은 끔찍한 사건이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한다. 생후 1개월 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고 때려 숨지게 하거나, 아이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 20∼40대 기혼 여성 11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분의 1이 극단적 선택 충동을 느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 키우는 엄마를 ‘맘충’이라며 비웃는 사회에서 우울증을 겪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일 정도다. ‘육아 왕따’의 두려움에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 비극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출산율 순위에서 한국(0.81명)은 꼴찌, 일본(1.30명)은 바로 그 앞이었다. 육아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한 나랏돈을 아무리 쓴들 저출산 늪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벼랑 끝에 내몰린 엄마들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비극은 다시 찾아온다.

#일본#고립 육아#육아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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