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기록적 폭우로 경북 포항 아파트 2곳의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하에 주차된 차를 옮기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을 듣고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40년을 해로한 노부부가 나란히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50대 여성은 기적적으로 구조됐지만 엄마를 따라나선 중2 아들은 숨지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수도권 집중호우로 서울 서초구 빌딩 지하주차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잇단 지하주차장 참사는 지하 공간이 수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일깨운다. 지하 공간은 침수가 시작되면 유속이 빨라져 순식간에 물이 찬다. 이번 포항 아파트 지하도 물에 잠기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는 지하주차장과 지하상가 등에서 12명이 숨졌고, 2016년 태풍 ‘차바’ 당시엔 울산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1명이 익사했으며, 2020년엔 집중호우로 부산 요양병원과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6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위험도에 비하면 대비책은 너무도 허술하다. 이번처럼 폭우가 예보된 상황에서는 비 오기 전에 지하에서 차를 빼놓아야 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지하에 가면 안 된다. 그러나 관리사무소는 지하주차장이 일부 침수된 후에도 안내방송을 했다고 한다. 대응 매뉴얼에 차량 이동 방송을 해야 하는 시기가 ‘침수 예상 시’로 모호하게 돼 있어 매뉴얼을 따르다가 오히려 피해를 키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17년부터 지하공간의 수방시설 설치 의무가 확대됐지만 사각지대가 워낙 넓고 소급 적용은 되지 않아 이번 포항 아파트처럼 오래전 지어진 건물의 지하 공간은 홍수 피해에 무방비 상태다.
요즘은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지하를 깊게 파 주차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기후변화로 시간당 100mm가 넘는 기습 호우가 잦아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무용지물인 수해 방지 매뉴얼부터 새로 만들어 배포하고, 대형 건물 지하주차장은 침수 방지 시설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 이번 포항 참사는 인근 하천이 갑자기 범람한 탓도 있는 만큼 전국 하천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해둘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가을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상청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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