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개전 초 우크라이나 통신시설을 주요 목표로 삼고 미사일과 폭탄을 퍼부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통신 인프라는 대거 파괴됐다. 위기 상황에서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머스크에게 ‘스타링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스타링크는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위성인터넷 서비스다. 머스크는 스타링크 단말기를 대거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6월까지 1만5000대 이상의 단말기가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전쟁 판도를 바꿨다.
지구 저궤도를 돌고 있는 2800여 개의 위성이 제공하는 스타링크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통신 마비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의 진격을 며칠 동안 멈추게 한 드론 공격과 실시간 포사격 좌표 제공, 러시아의 자존심인 모스크바함 격침 등 군사작전에도 스타링크가 활용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여론전을 펼 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의 학살이 만천하에 알려진 것도, 전황이 생생하게 중계된 것도 모두 스타링크 덕분이다.
러시아는 해킹과 전파 방해 등을 동원해 스타링크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스타링크의 안정성도 뛰어나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에서 검증된 스타링크 서비스가 북한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 인민이 진실을 아는 것이다. 북한 주민이 인터넷을 하고, 외부와 통화도 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굶주릴 때 김씨 일가가 얼마나 호화롭게 살았는지 등 당국의 거짓말을 모두 알게 된다. 진실의 힘은 북한 체제가 쌓은 거짓의 성을 순식간에 허물어버릴 수 있다. 마침 2년 전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자 북한과 중국은 북-중 국경에 뚫기 어려운 높은 철조망과 촘촘한 감시 카메라로 군사분계선 못지않은 장벽을 만들었다. 과거 사람이 오가며 북한에 유입되던 정보의 흐름이 거의 막혔다.
하지만 땅을 막을 순 있어도 하늘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직은 우크라이나에서 위력을 발휘한 스타링크가 북한에선 활용되기 어렵다. 이를 사용하려면 위성 안테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안테나의 크기가 직경이 수십 cm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보위부가 가택을 수색하면 적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8월 말 머스크 CEO는 위성 안테나가 필요 없는 서비스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 위성과 휴대전화가 직접 연결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위성 안테나가 필요한 이유는 295kg의 소형 위성이 쏘는 전파가 휴대전화로 받기엔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휴대전화가 직접 수신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호를 내쏘는 위성을 개발했다. 위성에는 한 변이 5m, 전체 면적이 25m²인 강력한 안테나가 장착된다. 이미 실험은 성공했다. 내년부터 미국 내 점유율 2위 이동통신사인 티모바일(T-Mobile)과 제휴해 2023년 베타 테스트를, 2024년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6월 스타링크는 내년부터 한국을 서비스 지역에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는 스타링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그러나 북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반도 상공에서 스타링크 위성들이 휴대전화로 수신할 수 있는 신호를 내쏜다면 엄청난 일이다. 이젠 북한도 위성 안테나가 필요 없게 된다. 북한 당국이 이미 보급된 500만 대 이상의 휴대전화가 위성 신호를 받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진 몰라도 휴대전화를 외부에서 몰래 들여가면 막기 어려울 것이다. 스타링크를 막기 위한 전파 방해와 해킹은 러시아도 성공하지 못했다.
과거 북한과의 통화는 중국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북-중 국경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타링크 수신이 가능한 휴대전화만 있으면 평양을 비롯해 어느 지역에서도 외부와의 통화는 물론이고 사진과 동영상까지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당장 내년부터 가능한 시나리오다. 휴대전화는 몰래 숨기면 찾기도 매우 어렵다.
김정은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됐다. 설사 스타링크를 막는 데 성공한다 해도 몇 년 뒤 또 어떤 기술이 나올지 모른다. 김정은의 버티기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머스크는 북한 인민에게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