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있는 사람이 환영받는다. 변덕스럽고 변화가 잦으면 신뢰하기 어렵다. 일관성은 꾸준함과 성실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프랑시스 피카비아는 일관성과는 거리가 먼 예술가였다. 새로운 양식이 등장할 때마다 작품 스타일을 바꿨다.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시도 쓰고 영화에도 관여하고 잡지도 출간했다. 한마디로 진득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과연 그는 성공했을까?
파리 태생의 피카비아는 미술대학 졸업 후 처음에는 인상주의 그림을 그렸다. 1909년부터 당시 전위예술로 떠오르던 입체주의에 빠졌다가 추상화가로 전환하더니, 마르셀 뒤샹을 만난 이후로는 다다 운동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1921년 이후에는 초현실주의로 관심을 돌리며 기계 시대를 대변하는 콜라주 작업에 몰입했다. 그러다 1925년 다시 구상회화로 돌아가 ‘괴물들’ 연작을 제작했는데, 이 초상화도 여기에 속한다. 그림 속 연인은 괴기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여자를 껴안으며 강제로 입을 맞추려 하자, 여자가 손으로 밀쳐내고 있다. 놀란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선지 여자의 왼쪽 눈은 눈동자가 두 개나 된다. 남자의 코는 비정상적으로 크고 눈도 세로로 돌아갔다. 제목을 보니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사이다. 만나자마자 들이대는 남자라니! 여자가 당황할 만도 하다.
너무 급하게 달궈진 관계는 금방 식기 마련이다. 피카비아에겐 예술이 그랬던 듯하다. 인상주의, 입체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구상화, 추상주의 등 그 모든 양식들을 새롭게 만날 때마다 너무 빨리 빠져들었다가 금세 싫증을 냈다.
헛된 경험은 없는 법. 피카비아는 평생 새로운 것을 좇아 변신하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버무린 자신만의 스타일로 명성을 얻었다. 하긴 그에게도 일관성이 있기는 했다. 바로 기성 예술의 규범과 관습을 일관되게 무시하고 계속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 변화가 없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증명한 예술가였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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