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어제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 당국자 회담을 열자고 전격 제안했다. 권 장관은 “북한 당국이 우리 제안에 조속히 호응해 나올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정부는 열린 마음으로 회담 일자, 장소, 의제와 형식도 북측 희망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한반도 분단이 낳은 인도주의적 비극이자 당장 시급하고 절박한 현안이다. 현재 우리 측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3654명 가운데 생존자는 4만3746명이다. 대다수가 80, 90대 초고령층으로 한 달에만 400여 명이 세상을 뜨고 있다. 이들에게 북녘의 가족을 만나 70년 생이별의 고통과 한을 위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도 마련해주자는 남측 제안에 북한 당국은 조속히 응답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북한의 대형 핵도발이 우려되는 긴장 국면에서 이런 응당한 제안도 느닷없어 보이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래 북한은 대남 적대적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지원 제안을 담은 전통문 접수 여부마저 밝히지 않은 채 무응답으로 일관했고, 대북 로드맵 ‘담대한 구상’에도 “남측을 절대 상대해주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단 제안하고 보자는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도 마치 때 되면 틀어놓는 유행가처럼 들리는 이유다. 사전에 물밑에서 의사를 타진한 것도 아닌 데다 적십자를 통한 간접적 제안도 건너뛴 채 정부가 직접 나섰다. 그러니 존재감을 의심받는 통일부가 추석 전 뉴스 만들기 차원에서 급조한 이벤트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남북 대결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진정성을 담은 선의(善意)라도 상대가 호응하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뿐이다. 특히 인도적 사안의 경우 정치군사 문제에서 분리해내 원칙을 지키되 드러나지 않게 교류하는 독일식 접근법 같은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해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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