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서울을 점령한 것 같은 일주일이었다. 올해 최고의 아트 이벤트라 꼽힌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의 첫 공동 개최 전시. 코엑스에도, 이태원 바에도, 강남 럭셔리 브랜드 파티장에도 아트와 샴페인, 음악이 넘쳐났다. ‘지금 전 세계 아트 마켓의 주인공은 서울이다’라는 이야기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서울을 ‘프리즈 서울’이 삼켰다, 세계 3대 아트 페어란 위상에 걸맞게 “역시 놀 줄 안다”는 평도 많았다. 놀 줄 아는 이들이 서울로 데려온 이들은 프랜시스 베이컨, 파블로 피카소, 조지 콘도, 앙리 마티스, 루이즈 부르주아…. 불꽃이 튈 수밖에 없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 배후에서 은밀하고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홀린 듯 관람객을 끌어들인 일등 공신은 부스 디자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간 운용 능력. 공간으로만 보자면 아트 페어는 평면적이고 무료한 무대다. 평평한 바닥에 흰색 패널 몇 개로 간단하게 만든 작은 구조물의 집합체. 마른풀과 나뭇잎 등 이용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해 화사하게 집을 짓는 바우어새가 이 현장을 본다면 연신 하품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프리즈 서울은 다채로운 공간 구성으로 매력적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벨기에를 대표하는 갤러리 ‘악셀 페르보르트’의 부스. 카녜이 웨스트, 로버트 드니로, 스팅 등 수많은 별들이 추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악셀 페르보르트가 이끄는 이곳은 곳곳에 가벽을 세우고 벽면 전체를 우물처럼 깊은 검은색으로 마감한 후 그 안에 윤형근과 정창섭의 단색화, 타키스의 조각, 권대섭의 달항아리 등을 진열해 돈 냄새보다도 오히려 기품이 먼저 와닿는 공간을 완성했다. 오직 그 작품 하나만을 신처럼 비추는, 섬세한 조도의 조명도 인상적이었다. 리처드 내기 갤러리는 공간 전체를 에곤 실레의 작품 40여 점으로만 꾸려 부실한 구조의 부스도 힘 있게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 갤러리 중에는 갤러리현대가 돋보였다. 박현기, 이승택, 곽인식 등 돌로 작업하는 3명의 작품으로만 꾸몄는데 무덤덤하면서도 관능적인 돌의 세계가 새삼 강력한 매혹으로 와닿았다. 그런 공간 운용 능력과 기획력은 부스를 속속 작은 미술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작품을 판매하는 것만큼이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경의, 그에 걸맞은 옷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넌지시 속삭이는 듯했다.
프리즈 서울이 이번에 판매한 금액 총합이 6000억∼8000억 원에 이를 거란 분석이 나온다. 작품도 돋보였지만 공들여 만든 공간에서 시작된 매력, 호소력, 견인력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림이 주인공인 아트 페어에서도 우리 마음은 자연스레 공간과 기운에 가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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